앞마당의 앉은뱅이 우물을 돌아온 20여 명의 초등학생들이 야트막한 담 앞에서 인솔교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놀이의 담’을 통과해야 안채로 들어갈 수 있어요. 제가 말하는 대로 흉내를 내며 한 발짝씩 담으로 가까이 오는 거예요. 자, 무궁화꽃이 춤을 춥니다!”
술래가 된 교사가 외치자 아이들은 저마다 춤을 춘다. 무궁화꽃이 노래를 부르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무궁화꽃이 샤워를 하면 샤워하는 흉내를 내며 담벼락으로 다가섰다.
9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근대문화유산 ‘최순우 옛집’에서 펼쳐진 아이들의 놀이마당. 초대받은 어린이들은 정릉, 월곡청소년센터의 공부방 아이들이었다. 이날의 현장학습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가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집을 보존하기 위해 매입해 관리하고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예술학교 교사를 초빙해 마련된 것이었다.
이날 공부방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생전의 최 선생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등 저서를 집필했던 옛집을 둘러본 뒤 이를 소개하는 신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김소정 어린이문화예술학교 교사가 진행한 이날 현장학습의 모든 과정은 몸과 마음으로 즐기는 연극놀이로 진행됐다. 참가한 어린이들은 귀신울음소리를 내며 우물가를 돌고, 안채와 담벼락 사이는 비밀통로를 빠져나가듯 자세를 낮춰 통과하고, 뒤뜰에서는 잠시 전략회의도 한 뒤 숨죽여 사랑방으로 진입했다.
두 팀으로 나뉘어 1절 전지에 가득 옛집 지도를 그려 넣고, 각자가 만든 안내문을 붙여 신문을 완성했다.
‘이 꽃의 이름은 물배추. 나와 같은 (나이로) 13년을 살았다. 170년 된 거북이는 최순우 선생님이 아끼던 돌 중 하나다. 이제는 물배추를 지키고 있다. 물배추와 거북이를 보러 오세요.’
놀이를 하면서도 아이들은 집안에 놓인 석상, 나무, 꽃 한 포기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던 것.
최 선생의 집이 근대문화유산이 되도록 주도한 시민모임인 내셔널트러스트 김미현 간사는 “개발의 파고에서 문화유산을 지키려면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역의 공부방 아이들을 초대하는 등 주민체험 행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이곳을 지역사회에 열린 문화재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23, 30일 성북구 내 다른 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극놀이와 옛집 곳곳에 걸터앉아 수묵채색화를 그려 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놓았다. 2004년 개관 뒤 매년 가을 해 온 전시회도 올해는 10월 17∼31일 최 선생이 받은 연하장을 주제로 꾸릴 예정이다.
‘최순우 옛집’은 화∼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료 개방된다. 02-3675-3401∼2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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