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상처만 남긴 ‘파업의 여름’

  • 입력 2006년 9월 13일 03시 02분


12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안 공사장에서 복귀한 포항건설노조원 500여 명과 비노조원 1300여 명 등 1800여 명이 파이넥스설비 공사를 하고 있다. 포항=이권효 기자
12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안 공사장에서 복귀한 포항건설노조원 500여 명과 비노조원 1300여 명 등 1800여 명이 파이넥스설비 공사를 하고 있다. 포항=이권효 기자
75일 동안 계속된 포항건설노조의 파업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포항건설노조는 지난달 중순 마련된 노사잠정합의안을 13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남구 장흥동 근로자복지회관에서 전체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노조원 사이에 합의안 찬반투표로 파업 여부를 결정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노사교섭단은 지난달 12일 임금 평균 5.2% 인상을 비롯해 토요유급휴무제 대신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면 일당의 1.5배를 지급하기로 하는 등 6개항에 잠정 합의했으나 노조 집행부는 주5일 근무 및 토요유급제 등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했다.

▽합의안 수용 분위기 우세=노조 집행부는 공사현장에 복귀하는 노조원이 갈수록 늘어나는 데다 투표를 요구하는 노조원이 다수여서 이를 받아들였다.

노조원 중 작업반장 120여 명은 9일 노사 양측에 교섭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노사교섭단은 10일 잠정합의안을 서로 받아들이기로 협약했다. 노조 교섭단 관계자들은 포스코건설과 건설협의회를 찾아 파업에 따른 피해를 사과하고 폐업 업체에 대한 선처를 요청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합의안은 찬반투표에서 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투표자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합의안은 가결된다.

1일부터 노조원 100여 명이 현장으로 돌아온 이후 12일 현재 포항제철소 안 30여 개 공사장에 복귀한 노조원은 510여 명이다. 이들은 비노조원 1300여 명과 함께 공사를 하고 있다. 정상적인 공사에 필요한 인원(3000∼3500명)의 60%에 해당된다.

지난주 현장에 복귀한 노조원 최모(49) 씨는 “이제 집행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복귀하는 노조원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지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 민주노총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대돼 결과적으로 노조원들만 큰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추석이 고비인 건설업체들=투표 이후 공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더라도 건설업체들이 경영난을 이겨 낼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건설업체 3곳이 폐업신고를 했고 나머지 업체들도 자금난이 심각하다.

한 전기분야 업체의 대표는 “업체들마다 20여 일 앞으로 닥친 추석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며 “차라리 추석 이후부터 공사를 시작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도 많다”고 전했다. 업체들은 원청업체인 포스코건설을 통해 한 달 단위로 공사대금을 받고 있어서 지금으로서는 포스코건설이 공사대금을 앞당겨 지급하지 않으면 파업 종결이 오히려 경영난을 가중시킬 형편이다.

▽새로운 건설노조 출범=찬반투표를 계기로 포항건설노조가 2개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노조원은 7일 노조 집행부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민주노총 탈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조만간 한국노총 포항지부를 설립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기업노조는 복수 노조를 설립할 수 없지만 지역노조나 산별노조는 복수 노조가 가능하다.

새 노조 설립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강경 파업 위주의 노동운동으로는 안 된다는 뜻을 집행부에 여러 번 전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며 “조합원에게 희생만 강요하는 노조가 아닌 노사와 시민이 상생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새 노조 설립에 동의하는 노조원은 현재 300여 명이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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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노총 ‘노사로드맵’ 충돌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관계 단절로 치닫고 있다.

한국노총은 로드맵을 타결짓고 나오던 이용득 위원장이 11일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뺨을 맞은 데 대해 “공식 사과를 하지 않으면 민주노총과의 관계 단절과 연대 파기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조합원 1000여 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회관 앞에서 민주노총 규탄집회를 열고 영등포구 영등포2가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행진을 벌였다.

반면 민주노총은 “노사관계 로드맵은 정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노총 등의 야합이며 10월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두 노총 간 갈등은 이 위원장 폭행 사건을 계기로 불거졌으나 로드맵 협상 과정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반목이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노총에는 중소사업장이 주로 가입돼 있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치가 시행되면 노총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노총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반대에 초점을 맞춰 3년 유예안을 관철시켰다.

반면 민주노총은 11일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통과된 ‘필수공익사업장 대체근로 도입’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필수공익사업장들이 대부분 민주노총 소속이며 대체근로가 도입되면 파업이 어려워져 투쟁 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에 참여했던 정부의 한 관계자는 “두 노총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어차피 각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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