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랬던 그들’이…
노 전 대통령이 김용철 대법원장을 재지명하려 하자 전체 법관의 절반인 430여 명의 판사가 ‘민주화 시대에 맞지 않는 인사’라는 이유로 집단 반대 성명을 냈고 김 전 대법원장은 스스로 사퇴했다.
노 전 대통령이 새로이 정기승 대법관을 후임 대법원장으로 지명했으나 이번에는 사법연수원생까지 나섰다. 연수원 18기(사법시험 28회)가 반대 서명을 주도하고 19기가 가세했다.
당시 19기 연수원생자치회 총무로 서명운동에 동참했던 주 의원에 따르면 현재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받아 전 후보자의 헌재 소장 지명 과정을 실무 총괄하고 있는 전해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김진국 법무비서관 등이 19기 동기생들의 서명운동을 주도했다는 것.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전 후보자 지명을 옹호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최재천(연수원 19기) 정성호 문병호(이상 18기) 의원도 서명운동에 적극적이었다고 주 의원은 기억했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시국 관련 집단행동은 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정 대법원장’에 반대했는지는 명확한 기록이 없다. 당시 서명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당시 정 대법관이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라서 안 된다는 등의 얘기가 많았다”는 정도로 기억할 뿐이다.
사법연수원생들의 ‘궐기’는 승리했다.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여소야대의 국회가 부결시켜 버린 것. 이 또한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연수원생들은 “사법부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며 자축했다고 한다.
■‘속모를 그들’로…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2006년 8월 16일, 이제는 청와대 실세가 된 전해철 수석은 전효숙 헌재 재판관에게 전화를 걸어 헌재 소장 지명 사실을 알리며 임기와 관련해 헌재 재판관직 사직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 재판관은 이 전화에 따라 사직서를 냈다. 전 수석은 또 헌재 소장의 임기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장 비서실장에게도 전화해 ‘상의’했다.
전 수석의 그런 행동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사법연수원 동기(7기·사법시험 17회)인 전 후보자를 임기 6년의 헌재 소장으로 임명하기 위해 헌재 재판관직을 중도 사퇴시키는 ‘편법’을 쓴 것도 ‘권력의 사법부 장악 의도’라는 의심을 살 일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18년 전 ‘정권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의심으로 대법원장 임명 반대를 외쳤던 전 수석이 지금은 그런 의심을 자초하는 중심부에 서 있는 셈이다.
전 수석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며 “사법연수원 동기들에게나 물어보라”고 말했다.
최재천 의원은 전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상정될 예정이었던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의 적법성을 둘러싸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과 법리 공방을 벌이며 “전 후보자의 임명동의 절차에 문제가 없는 만큼 동의안을 표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의원은 12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1988년 정 대법원장 지명 반대 서명운동을 벌인 데 대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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