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發 전세대란 수도권 확산

  • 입력 2006년 9월 14일 03시 02분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도담마을 아이파크 32평형에 전세를 사는 최모(36) 씨는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했다.

전세금은 이전까지의 8000만 원에서 1억2000만 원으로 4000만 원이나 올랐다. 한 달 전만 해도 부동산중개업소 전세 시세는 1억500만 원이었는데 그 사이에 1500만 원이나 더 뛰었다. 부근의 다른 아파트를 알아봤지만 모두 시세가 껑충 뛰어 있었다.

최 씨는 “맞벌이하는 동안 두 아이를 맡아 주는 처가가 가까워 더 멀리 이사할 형편도 아니다”며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 재계약했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금이 가파르게 올라 서민 및 중산층이 발을 구르고 있다. 전세물건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서울 강북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 강남권과 경기 일부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전세자금 대출 확대 등 판에 박힌 것 외에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 확산되는 전세난

전세난은 지난달 중순 이후 주로 서울 강북지역에서 나타났지만 최근 들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경기 과천시 용인시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13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8월 한 달간 지역별 전세금 상승률은 서울 강북 14개구가 0.6%로 전국 0.2%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서울 전체와 경기의 상승률은 0.4%였다.

이달 들어서는 서울 강남과 경기 일부 지역도 불안한 모습이다.

9월 4∼10일 1주일간 서울에서는 마포구가 0.3% 올랐고, 강남 서초 은평 노원구 등이 0.2%의 상승률을 보였다. 전세금이 1주일 사이에 0.2% 이상 오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정부도 주간 전세금 상승률이 0.2% 이상이면 전세시장이 불안한 것으로 본다.

경기 일부 지역은 더욱 불안하다. 용인시는 4∼10일 0.6%나 올랐고 그전 주에도 0.3% 올랐다. 과천시도 재건축 등으로 전세물건이 부족해져 4∼10일 0.4% 올랐고 그 전주에도 1.9% 올랐다.

○ 전세자금 지원 늘려 급한 불 끄기?

정부는 13일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올해 영세민 근로자 전세자금 지원액을 1조6000억 원에서 2조 원으로 4000억 원 늘리기로 했다.

무주택 가구주이고 연간 소득이 3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는 보증금 6000만 원 이하인 전세를 계약할 때 42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은 저소득 영세민은 보증금 5000만 원 이하인 전세에 들어갈 때 3500만 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 창구는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

또 정부는 건교부, 재경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계약 조기 해지 요구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위반행위 등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 전세난, 일시적인가, 구조적인가?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대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예컨대 전세자금을 지원받으려면 전세 보증금이 5000만 원(영세민), 또는 6000만 원(근로자)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전세난이 심각한 수도권에서는 대부분 전세 보증금이 이 한도를 넘어선다.

정부가 이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유는 최근의 전세난이 가을철 이사와 결혼이 몰리는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

김용덕 건교부 차관은 “7, 8월 서울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이 같은 기간 과거 20년 평균 상승률을 밑돌고 있다”면서 “주택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든 만큼 전세 불안은 10월 이후에 곧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세금 상승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재산세 부담이 커진 데다 금리가 낮아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려 전세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전세 공급이 늘어날 수 있도록 소규모 임대사업자 활성화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컨설팅 업체 RE멤버스의 고종완 대표는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은 주택보급률이 90%대에 머물고 있는데 인구는 계속 유입되고 있어 전세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2004년 이후 주택공급은 계속 줄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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