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균]‘인문학 위기’ 뒷짐 진 교육당국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그 무섭다는 암 중에서도 특히 무서운 게 췌장암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발견이 늦어서 말기에는 손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죠.”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한 지방 국립대 인문대학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고려대 문과대 교수 121명이 15일 ‘인문학 선언’을 발표해 국민에게 인문학 위기의 심각성을 알린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인문학 위기의 실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인문학의 위기관리’도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문의 기초인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철학과 교수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로의 변신, 불문과 교수에게 2년 안에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대학, 비인기 어문학과의 대학원생 멸종(?) 현상이 수년간 이어져 왔다.

교육 당국이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인문학 학과들의 통폐합 실태를 파악하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인문학과 폐과나 정원 감소 규모 등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곳에 물어봤지만 서로 문제를 떠넘기는 ‘핑퐁’으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정책과는 “2003년 대학 정원 완전자율화 이후 대학별 총정원만 관리하기 때문에 학과별 정원은 알 길이 없다”고 말했고, 학술진흥과는 “계열별 학생 수 통계는 있지만 학과별 통계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인문학 위기와 관련해 파악한 현황은 없다고 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교육통계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개발원에 알아보라”고 했지만 교육개발원은 “학과 통폐합 상황을 취합하려면 기존 교육통계를 다 뒤져 봐야 하는데…”라며 난처해 했다.

암 환자가 아우성을 치는데도 의사가 처방을 내리기는커녕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문학계도 정작 인문학이 왜 위기에 빠졌는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설계가 있는지 의문이다. 인문학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내다보고 미리 대비했더라면 지금처럼 손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희균 교육생활팀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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