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이 특정발언 이유 사퇴요구는 처음

  • 입력 2006년 9월 22일 02시 59분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천기흥·사진)가 21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즉각 자진 사퇴 촉구’라는 초강수를 두고 나선 데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법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재야 법조계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반발감이 짙게 깔려 있다.

‘유감 표명’이나 ‘공개사과 요구’ 같은 완곡한 대응을 놔두고 곧바로 사법부 수장의 거취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을 놓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문제 제기를 하긴 해야 하지만, 너무 나간 것 아닌가”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대법원과의 관계 회복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변협의 사퇴 촉구 성명은 일선 변호사들의 들끓는 반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지방의 한 변호사는 ‘이 대법원장도 5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남을 속이는 서류를 만들었는가’라는 내용의 팩스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변호사들은 ‘대법원장의 발언은 탄핵 사유가 된다’ ‘명예훼손에 따른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 등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법원장 사퇴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자’는 주장 등을 변협에 전해 왔다고 한다.

변협의 한 관계자는 “상임이사회 때 극단적인 반응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며 “그러나 일선 변호사들의 반발에 비하면 대법원장 사퇴 촉구는 완화된 의견”이라고 말했다.

한편 변협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변협은 1960년 4월 27일 ‘3·15부정선거’ 반대 사태와 관련한 구속자를 즉시 석방하라는 요구와 함께 조용순 대법원장의 ‘즉각 용퇴(勇退)’를 촉구했다. 1971년 7월 31일에는 1차 사법파동과 관련해 민복기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했고, 1985년 9월 10일에는 군사정권으로부터의 ‘법관의 독립과 신분보장 수호’를 내세우며 유태흥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1993년 7월 5일 김덕주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의 동시 사퇴를 촉구한 것은 ‘사법부의 개혁’ 요구와 맞물려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대법원장의 특정 발언과 발언 방식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사퇴 요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대한변협 성명서 전문

법조비리사건으로 법조계 모두가 책임을 공감하고 자정해야 할 때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법원과 검찰, 변호사의 역할을 무시하고 법조삼륜이 유지해 온 사법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법원과 검찰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노력해 왔으며 변호사단체는 인권단체로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기여해 왔다. 그럼에도 대법원장이 법원은 정권유지의 수단에 불과했고, 검찰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야 한다고 하며, 변호사들이 만든 서류는 사람을 속여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일련의 발언을 한 것은 우리나라 법조 전체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사법부를 책임지고 이끌 자격과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 이래 계속되어 온 부적절한 발언으로 사법 전체의 불신을 초래한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즉각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

▼鄭총장 지휘서신 요지▼

밀실수사등 표현 당혹… 검찰가족 충격 생각에 마음 무거워

최근 대법원장께서 지방법원을 순회하면서 했던 훈시 중에 검찰의 위상과 역할에 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 포함돼 있어, 여러분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검사가 조사한 수사기록을 던져 버리라’고 하셨다는데, 비록 재판의 구술주의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하신 말씀이라 할지라도 이는 듣기에 민망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로 국민을 위한 수사 활동을 담당하는 검사가 적법하게 작성하고 법률로 증거능력이 부여된 조서를 무시해 버리라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씀으로서, 안타깝고 유감스럽습니다.

더구나 변호인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고 영상녹화 등에 의하여 투명성과 적법성이 담보되는 검사실 조사를 ‘밀실’ 수사라고 표현하신 것에 대하여는, 국민들이 검찰 수사를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볼 때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검사는 수사기록 제출 외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공판중심주의의 강화에 따라 증거 분리제출 제도를 확대하고 공판검사 수는 물론 그 역량을 대폭 보강하고 있는 검찰의 노력을 도외시한 것으로 아쉬움이 큽니다.

일선의 우리 검찰가족들이 대법원장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듣고 받았을 충격과 실망감을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이며 ‘국민에 대한 봉사기관’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차분히 우리를 반성하고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처신을 무겁고 신중하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며, 국가 사정의 중추로서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여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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