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1시, 서울 중랑구 망우동 혜원여고. 이 학교 도서관에 마련된 협력수업실에서는 3학년 학생 16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강대와 성균관대 2학기 수시모집에 대비한 논술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강대는 어느 한 제시문의 관점에서 다른 제시문의 입장을 분석해 보는 문제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명엽(28·국어) 교사가 서강대 수시를 겨냥한 제시문과 논제를 내자, 학생들은 이내 자신들이 쓸 글의 뼈대를 요약한 ‘개요문’을 제출했다. 학생들은 △문제 분석 △주제문 △서론 △본론 △결론으로 칸이 나뉜 개요문 형식에 맞춰 글의 설계도를 작성했다. 김 교사는 이 가운데 박희수 양의 개요문을 빔 프로젝터를 통해 스크린에 비췄다.
“어때요? 주제문이….”
박 양이 ‘자유에 대한 투쟁은 진화적 과정이 아닌, 인간의 의지에 의한 결과이다’고 쓴 주제문을 두고 김 교사가 운을 뗐다. 한 학생이 말했다.
“‘인간의 의지’란 표현은 중요하지만 ‘진화적 과정’은 핵심에서 벗어난 표현이 아닐까요?”
10여 분간 학생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 과정에서 김 교사는 ‘이성적 존재’ ‘의지’ ‘자유’라는 3개의 핵심 단어를 콕 집어낸 뒤 이들 단어를 ‘인간에 대한 태도’라는 관점으로 묶으면서 논의를 정리했다.
30분가량의 토론식 수업이 끝났다. 학생들은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토론실로 자리를 옮겼다. 김 교사 외에 윤리 과목을 맡고 있는 심용만(46) 교사도 합세했다. 교사와 학생들은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두고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서강대는 뭐가 중요하다고? 맞아요. 관점. 하나의 관점으로 또 다른 관점을 비판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지. 스키너는 인간이 조작되고 통제될 수 있는 존재라는 주장을 폈는데, 만약 ‘자유롭고 이성적인 인간’이란 관점에서 스키너의 이론을 반박해 본다면?”(김 교사)
“스키너는 자신의 딸을 2년간 가둬 놓고 실험도구로 삼으면서 자기 이론을 입증했어요. 하지만 딸은 결국 자살하고 말았죠. 이런 사례 자체가 반박의 근거가 되지 않을까요?”(3학년 송화수 양)
토론은 30분 넘게 이어졌다. 심 교사가 수업을 정리했다.
“특히 문과는 과학의 발전을 늘 인간의 문제와 연계시켜 생각해야 해. 스키너의 이론도, 파블로프의 이론도 결국엔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볼 것이냐 하는 고민으로 귀결되니까 말이지.”
혜원여고의 논술수업은 교사의 ‘다이렉트(direct) 관리’가 큰 특징이다. 학생들은 입학하면서부터 학교가 자체 제작한 ‘독서사랑’ 책자를 통해 체계적인 독서관리를 받는다. △문학 △인문과학 △자연과학 △예술·기타 분야에 걸쳐 25권씩 모두 100권의 필독서가 학생들에게 제시된다. 14개 학급을 4개조로 나누어 △인문사회 △자연과학 △예술·기타 △문학·신문 활용교육 등 4개 분야의 책을 돌아가면서 읽도록 지도한다. 학생들은 독후감을 쓴 뒤 해당 분야 교사들에게서 지도와 평가를 받는다.
2학년에 접어들면 논술수업은 점차 ‘입시형’으로 바뀐다. 이 학교 교사들이 직접 제작한 학습지 형태의 논술지가 격주로 배포된다. 수강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수업을 들은 후 글을 써 내고 지도교사의 첨삭 지도를 받는다.
3학년이 되면 교사들이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1 대 1로 달라붙는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윤리, 국사, 한문 담당 교사 13명으로 이뤄진 독서논술 태스크포스가 꾸려진다. 윤리 담당 심 교사를 팀장으로 하는 이 팀의 교사들은 1인당 학생 5명을 맡아 대면 첨삭지도에 들어간다. 대학별 수시모집을 앞두고는 지망하는 대학별로 학생들을 묶어 맞춤형 강의에 들어간다. 강의는 그날 강의의 핵심 내용을 담은 책이나 신문기사에 대한 토론으로 끝을 맺는다.
서강대 1학기 수시모집(신문방송학과)에 합격한 3학년 김다영 양은 “1주일에 세 번 글을 써 냈고 1주일에 5, 6시간 동안 신지호(국어) 선생님에게서 1 대 1 첨삭지도를 받았다”면서 “지망하는 학교의 논술 출제 경향에 맞춰서 내가 취약한 분야를 선생님이 콕 집어 지도해 주니 학원에 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심 교사는 “고교 윤리교과서에만 85명의 사상가가 등장한다. 1학년 때부터 학생들의 독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폭넓은 배경지식을 쌓도록 유도해야 한다”면서 “교사들이 힘들더라도 학생의 글을 일일이 읽고 고쳐 주고 함께 토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논술 대비법”이라고 말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