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풍선효과

  • 입력 2006년 9월 26일 03시 07분


번 벌로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부부가 공저한 ‘매춘의 역사’는 ‘매춘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와 함께 ‘매춘을 근절하기 위한 인류의 오랜 노력이 얼마나 처절하게 좌절돼 왔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다. 좌절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역설적으로 ‘매춘을 무조건 금지하고 보자’는 원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국내의 성매매 여성은 33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성매매업소 집결지(사창가)에 있는 여성은 1만 명쯤 된다고 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의 2002년 조사 결과다. 이들이 주로 20∼39세의 여성이라고 한다면 성매매 여성은 같은 연령대 국내 여성(800만 명)의 4%에 해당된다. 이쯤 되면 ‘매춘 공화국’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는 2004년 성매매단속특별법을 도입했지만 전체 성매매 여성 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주로 집결지만 단속해 왔기 때문에 주택가 등으로 사라진 여성은 체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인권의 문제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는 원리주의적 접근보다는 여성이 성매매에 몸을 내맡기는 동기를 차단하고 인신 매매, 마약 거래, 조직범죄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실용적 접근이 효과적이다. 근절 쪽에 무게중심을 둔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된 지 9개월이 지난 금년 6월 한국경제연구원은 “법 시행 후 성매매가 주택가로 확산되는가 하면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가 늘면서 거래 비용이 싸지는 등 거래 경로가 분화돼 오히려 관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일하던 한국인 성매매 여성 70여 명을 붙잡아 수용소에 감금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교포 사회의 명예 실추는 물론 미국비자 면제협정에도 악영향이 있을까 걱정이다. 관계자들은 “성매매특별법의 후유증 탓도 있다”고 말한다. 이쪽에서 단속한다고 누르니, 태평양 건너 미국 쪽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결국 풍선을 누를 것이 아니라 풍선 속의 바람을 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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