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유니버시티

  • 입력 2006년 9월 27일 02시 55분


《미국 하버드대에는 ‘하버드매니지먼트컴퍼니’라는 자체적인 자산운용회사가 있다. 40여 명인 이 회사의 펀드매니저는 25조 원에 이르는 기금을 주식, 채권, 헤지펀드, 부동산 등에 골고루 투자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투자수익은 지난해까지 10년간 10조 원에 이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주요 25개 대학기금의 평균 운용수익률은 15%로 많은 대학이 재원(財源)의 대부분을 기금 운용으로 충당한다. 한국의 대학은 어떨까. 굴리는 자금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수익률도 형편없다. 그동안 은행 정기예금 같은 안전한 자산운용처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대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이 공격적인 ‘돈 굴리기’에 나서면서 보수적인 대학 자금운용 풍토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 등록금 들어오면 그날로 CD에 회사채에…

서강대는 돈을 효율적으로 굴리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한국사학재단이 집계한 주요 사립대의 지난해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서강대의 ‘투자 성적표’가 가장 좋았다. 등록금 788억 원과 적립금 846억 원 등 총 1634억 원을 운용해 88억 원(5.4%)의 수익을 냈다. 다른 대학들이 1∼2%대의 수익률에 그친 것에 비하면 돋보이는 투자 실적이다.

서강대는 정기예금에 10%만 넣어 두고 나머지는 회사채, 채권형 펀드, 양도성예금증서(CD),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어음 등에 골고루 투자하고 있다. 주식은 아직 손대지 않았다.

이 학교는 경영학 및 경제학과 교수와 학교를 졸업한 동문 펀드매니저들로 구성된 재정위원회가 자금 운용의 기본 틀을 짠다.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우선 경기 상황에 따라 금융회사를 적절히 구분해 투자한다. 경기가 좋을 때는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 상호저축은행, 종합금융 등 제2금융권을 주로 이용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안전한 은행에 돈을 맡긴다. 돈을 놀리지 않는다는 원칙도 지키고 있다. 주성영 서강대 재무팀장은 “‘시간은 돈’인데 우린 그냥 놀리는 돈이 없다”며 “등록금이 들어오면 그날 바로 쪼개 투자한다”고 밝혔다.

○ 기업 인수 위한 사모펀드에도 투자한다

서울대도 공격적인 투자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이 학교의 투자처는 50곳이나 된다.

약 2000억 원의 자금을 △채권 40% △주식 15% △사모(私募)펀드 15% △해외투자펀드 10% △머니마켓펀드(MMF) 10% △금융파생상품 10% 등으로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짠다.

서울대 역시 교수진과 금융계에 종사하는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발전기금운영위원회가 투자 결정을 내린다.

서울대 발전기금재단 이사인 주종남 기계항공학부 교수는 “전에는 정기예금에 넣거나 국공채 투자가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다소 과감한 투자도 하고 있다”며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과 위험하지만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곳에 적절히 분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대는 최근 중앙상호저축은행 인수를 위한 사모펀드에 50억 원을 투자해 화제가 된 바 있다.

○ “투자 잘하는 학교가 발전할 것”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대학은 자금운용 방식이 매우 보수적이다.

적립금만 5500억 원 가까이 되는 이화여대는 정기예금 90%, 국공채 10%의 비율로 운용하고 있다. 사실상 ‘한눈을 팔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돈에 관한 한 학교가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안전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펀드 투자조차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고려대도 정기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의 비중이 50∼60%에 이른다. 하지만 사모펀드 20∼30%, 금융파생상품 5% 등 적극적인 운용 스타일로 점차 변신하는 추세다.

연세대 측은 “학교의 구체적인 살림살이가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다”며 자금운용처 공개를 꺼렸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교에 돈이 들어오면 인건비, 운영비, 공사비 등으로 바로 지출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오랜 기간 투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전문가들은 이제 학교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 강신우 부사장은 “기업과 학교 모두 재정이 근간”이라며 “앞으로 투자를 잘하는 대학들은 발전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들은 재정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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