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광주고검·지검이 기존의 4층짜리 건물을 헐고 새 청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두 권력기관 사이에 미묘한 마찰이 빚어졌다.
검찰이 지하 2층, 지상 9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짓기로 하자 법원 쪽에서 “검찰 청사를 법원 청사보다 더 높게 지으면 곤란한 것 아니냐”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에 앞서 1993년에 신축된 법원 청사는 고법·지법 건물과 법정이 있는 부속건물까지 3개동이 ‘ㄱ’자 형태로 서 있는 6층짜리 건물.
검찰 쪽에서는 “사무실 수요가 폭증해서일 뿐 법원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라며 공사를 그대로 진행해 2001년 새 청사가 완공됐다.
대개 법원과 검찰 청사는 전국 어디서나 나란히 쌍둥이 건물처럼 서 있다. 그러나 광주에서만은 한동안 법원 청사가 검찰 청사를 내려다보다가 지금은 검찰 청사가 법원 청사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다.
어떤 지역에서는 새로 법원 청사, 검찰 청사를 지을 때 풍수지리상 어느 쪽 땅이 길지(吉地)냐를 놓고 두 기관 간에 설왕설래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광주 법원-검찰 청사의 역사에 대한민국 건국 이후 사법부와 검찰의 관계사가 응축돼 있다는 점이다.
6·25전쟁이 끝나갈 즈음인 1953년 2월부터 광주의 법원과 검찰은 금남로의 한 건물에서 ‘한 지붕 두 가족’으로 16년간 동거했다. 1969년 지금의 지산동 자리로 옮겨 올 때에도 나란히 4층짜리 건물을 지어 함께 이전했다.
이후 법원이 먼저 6층 건물을 지었고 이에 질세라 9층짜리 검찰 청사가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 미군정 시기에 검찰은 법원의 하부 조직이었다. 대법원에 검사국이라는 조직이 있어 한솥밥을 먹는 사이였다. 지금의 검찰총장 명칭도 ‘대법원 검사총장’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법원 검사국은 별도의 검찰 조직으로 독립했지만 법원과 검찰이 한 몸이라는 의식은 한동안 지속됐다. 1990년대 들어 사법부의 독립이 강화되고 위상이 높아지면서 두 기관 사이에 앙앙불락의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
광주 지산동의 법원, 검찰청 얘기가 떠오른 것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최근 발언 때문이다. 19일 대전을 방문한 이 대법원장은 “내가 전국 법원을 다녀 보니까 판사들이나 직원들이 ‘법원보다 검찰 청사가 한 층이라도 높다. 몇 cm라도 높다. 검찰이 꼭 저런다’며 속상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물론 이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법원으로서는 재판만 제대로 하면 검찰청 건물이 좀 높은들 상관없다”고 다독거렸다.
대법원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이번 논란은 한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온 국민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법을 다루는 판검사들이 속옷까지 훌렁 벗어던진 채 정치권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유치한 깔아뭉개기, 말꼬리 잡기식의 논쟁을 벌인 것에 국민의 실망은 크다. 이제라도 법률가다운 정리 정돈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그 좋다는 ‘공판중심주의’를 들여온들 판검사, 변호사가 한데 엉켜 법정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김정훈 사회부 차장 jnghn@donga.com
구독 100
구독
구독 6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