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엔 100년 된 학교가 9곳이나 있다

  • 입력 2006년 9월 27일 0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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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3일 개교 100년을 맞는 인천 송도 중고교의 한자 이름은 북한 개성의 옛 지명인 송도(松都)다.

1906년 개성 송악산 기슭에 세워졌던 이 학교는 6·25전쟁 이후인 1952년 4월 인천 중구 송학동(현 남부교육청 자리)에 임시로 ‘피란 학교’를 열었다가 통일 이후를 기약하며 인천에 눌러앉았다.

처음 이 학교는 서재필, 이상재 선생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개화파 윤치호(1865∼1945년) 선생이 ‘한영서원’이란 이름으로 설립했다.

1936년 송도고등보통학교로 교명이 바뀌었고, 교사를 1983년 중구에서 현재의 연수구 옥련동으로 옮겼다.

동문들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성에 있는 모교 방문을 추진했지만 성사시키지 못했다.

김성열 전 동아일보 사장, 이동원 이규현 전 외무부 장관, 우만형 전 내무부 장관, 이세호 전 육군참모총장,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장기려 선생, 조진형 최용규 전현직 국회의원, 농구선수 이충희 강동희 씨가 이 학교 출신이다.

29일∼10월 3일 교내 체육관과 운동장에서 인천시립교향악단 연주회, 100주년 기념탑 제막식, 동문 미술작가 전시회, 가족 한마당 대축제가 열린다.

인천에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가 송도중고교 외에도 7곳이 더 있다.

영화초교(동구 창영동)는 1892년 4월 국내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으로 출발했다.

중구 내동 내리교회의 선교사 존스 부인이 성경 공부와 신교육을 펼치기 위해 설립했다. 초기 학생 수는 남자 3명, 여자 2명에 불과했지만 교직원과 학생들이 단발을 하는 등 개화에 앞장서 주목을 받았다.

1900년대 초 신축된 2층 벽돌집 교사(인천시 문화재)는 지금도 본관과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을 제패한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지워 버린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 국내 최초의 여성 박사이자 여성계 지도자였던 김활란, 영화배우 황정순 씨가 이 학교를 나왔다.

프랑스 샤르트르 성바오로 수녀회는 1893년 인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에 이어 1900년 박문초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한 학년당 4개 반 이하로 학생을 받으며 특기적성 교육에 주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교기념일에는 전교생이 출연해 뮤지컬, 영어 연극, 무용,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2001년 9월 중구 답동에서 연수구 동춘동으로 이사했다.

1899년 부평공립소학교로 출발한 부평초교(계양구 계산1동)는 교정에 문화재를 3개나 보유하고 있다.

행정, 교육, 재판권을 관할하던 부평도호부 청사, 조선 정조대왕이 활을 쏘고 목욕을 했다는 어사대와 욕은지 등이다. 600년 넘은 은행나무 두 그루도 자라고 있다.

강화도에는 고려궁지 인근의 강화초(강화읍 관청리·1898년)와 합일초(강화읍 신문리·1901년), 교동초(교동면 대룡리·1906년) 등 3개교가 있다.

야구 명문 인천고(남구 주안4동)는 고종황제의 지시에 따라 1895년 한성외고 인천지교로 시작됐다. 1904년 인천일어학교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인천상업학교로 바뀌었다.

인천고는 1905년 야구부를 창단한 이래 전국대회에서 17차례나 우승했다. 최근 교내에 야구박물관도 세웠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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