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세계 100대 대학이 없다고들 한다. 평가에 영어 비중이 높게 반영되는 이유 등이 있으므로 우리 위상을 너무 비하할 필요는 없지만 국내 대학이 세계 정상으로 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해 우려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싱가포르의 대학이 왜 높은 경쟁력을 갖는지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선택과 집중이다. 건국 35년, 인구 300만 명의 싱가포르에는 두 개의 국립대가 있다. 모두 세계 100대 대학을 선정할 때 빠지지 않는다. 정부의 집중 투자 덕분이다. 미국도 연구중심 대학을 주(州)별로 한두 개 선정해 집중 투자한다. 교육의 진정한 공공성은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고, 입시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평준화 때문에 아무에게도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교육자의 직무유기이다.
둘째는 자율성이다. 자율성은 창의적 다양성을 낳는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정책을 만들어도 정부 중심으로 움직이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획일화된다. 세계 최고의 대학은 미국의 사립대다. 등록금에 대해 정부의 통제도 없고, 효도하겠다고 등록금 낮추라는 학생시위도 없다. 이곳에서 효도하는 방법은 장학금을 받도록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다. 싱가포르 정부도 이 교훈을 받아들여 정부 지원형 사립대로 ‘싱가포르 경영대’를 설립해 성공했고, 다른 두 국립대도 이 모형으로 바꾸는 중이다.
셋째는 재무구조이다. 싱가포르 경영대가 사립대인데도 정부가 지원하는 이유는 미국 사립대만큼의 기부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교육 기부금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환경에서 모양만 사립화를 하면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고, 경제성 위주로 교육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 재정자립은 바람직하나 지나치면 불특정 다수를 위한 학문연구는 고사하고 만다. 그러므로 기부문화를 강력히 장려하든지, 정부가 이에 상응한 지원을 하든지 선택해야 한다. 기부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대학이 기부금을 확보하면 이에 비례하여 대응 기부금을 지원한다.
넷째는 대학의 목표 수립과 평가방법이다. 대학은 자율적으로 목표를 수립하고 운영할 권한을 갖지만 목표와 성과는 엄격하게 평가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원 수준을 결정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국제 수준의 교수를 유치하기 위해 인건비로 얼마를 지급하건 참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와 교육의 결과는 엄격하게 평가한다. 비용 통제가 아닌 목표와 성과를 평가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비용 통제 위주로 가면 고급 교육의 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교육은 미래 산업이다. 교육은 공공성으로만 볼 수 없는 하나의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한 해 약 8조 원의 유학 경비를 지불하고 있다. 이 비용의 절반이면 한국의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절반의 교육 기회는 국내에서 가능하도록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싱가포르는 이런 목적으로 40개의 외국 대학을 유치해 교육 허브를 지향한다.
대학 경쟁력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간과하고 형평성만 강조하면 국가 경쟁력을 대비하지 못한다. 세계 100대 대학에 우리나라 대학이 다섯 개 이상은 있어야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겠는가?
이재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장 겸 테크노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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