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달리던 차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면서 첫 추돌사고가 발생했고, 곧바로 안전조치가 뒤따르지 않아 연쇄추돌이 불가피했다. 게다가 화재가 발생하면서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안개 속 연쇄 추돌=이날 오전 1시부터 서해대교 일대에는 안개주의보가 발령됐다. 오전 7시42분경 서울 방향 상행선 3개 차로 중 3차로를 달리던 25t 덤프트럭이 앞서 서행하던 1t트럭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추돌하면서 사고가 시작됐다.
이 두 차량은 별 피해가 없었으나 24t 덤프트럭이 2차로로 튕겨나면서 뒤에서 달려오던 승합차가 2차 추돌사고를 냈다. 1차로를 달리던 트레일러는 1차로와 2차로 중간에 멈춰선 승합차에서 승객들이 내리는 것을 발견하고 곧바로 멈춰섰으나, 이번에는 1차로에서 뒤따르던 버스가 트레일러를 추돌했다.
이후 사고 사실을 모르고 달리던 차량들은 1,2,3차로에서 '퍽' 소리를 내면서 잇따라 앞 차량을 들이받았다.
사고를 당한 승객과 운전자들은 차량 밖으로 나왔으나 무섭게 달리는 차량들 사이에서 어디로 피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차량 밖에 서 있다가 연쇄추돌로 튕겨진 차량에 부딪쳐 다친 사람도 상당수였다.
연쇄추돌이 발생하자마자 덤프트럭 뒤편 차량에서 연료탱크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했고 연쇄적으로 '펑, 펑'하는 굉음과 함께 차량 12대로 삽시간에 불이 번졌다. 사고현장은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는 가운데 차량 안에 갇힌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로 뒤덮였다.
▽안전시설물 없어 인명피해 커져=첫 추돌사고를 낸 덤프트럭을 추돌한 승합차 운전자 노효자(41·여) 씨는 시속 50㎞ 정도로 서행하는 데 갑자기 눈 앞에서 트럭이 나타나 급정거했지만 추돌을 피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노 씨에 따르면 동승자 8명이 모두 차에서 내리기도 전 뒷차가 추돌하면서 연쇄 추돌이 발생했다.
그는 "차에서 빠져나와 동승자 탈출을 도우며 도로에 서 있는데 '쌩'하고 과속으로 달리는 차들 때문에 어디로 피해야할지,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서해대교 위에는 소화전이나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지 않아 운전자나 승객들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초기에 화재가 진압되지 못하면서 차량들은 강한 불길에 휩싸였고, 사망자 11명 중 6명은 남녀 구별은 물론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탔다.
연쇄추돌이 일어나면서 갓길까지 사고차량이 뒤엉키면서 구급차량과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웠던 것도 인명피해를 키웠다.
경찰은 덤프트럭 운전자 이모(48) 씨가 안개 속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고 운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이 씨를 상대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사고 운전자들에 따르면 연쇄 추돌한 앞 차량들이 비상등을 켜지 않은 것도 추가 피해를 야기했다.
안개 속에서 비상등조차 켜지 않은 탓에 뒷 차량들이 사고를 파악하고 멈출 수 없었고, 이는 대형 연쇄추돌로 이어졌다.
강풍은 물론 짙은 안개로 악명이 높은 서해대교이지만 운전자들에게 이를 경고하는 전광판 두 곳만 작동되었을 뿐 안개로 인한 사고를 막을 만한 안전시설물은 없었다.
▽"큰형님 만나러 가다가…"=사망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들에는 신원 확인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붐볐다. 이날 오후 4시 경 충남 당진군 송악면 중앙장례식장 사무실에는 형을 잃은 김광수(33) 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광수 씨는 숨진 작은 형 광민(48) 씨와 함께 당진군 석문면 석문방조제에서 경기 화성의 부두로 가던 길이었다.
경기 화성 앞바다의 무인도로 낙지를 잡으러 떠난 큰 형 광순(44)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형제는 "요즘 낙지철이어서 광순이는 같이 명절을 보내기 어려울 것 같으니 동생들이 형을 찾아가 일을 도우며 위로해 주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따른 것.
두 형제는 3∼5일 동안 형을 도운 뒤 섬에서 나와 인천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명절을 보낼 예정이었다.
사고 순간 광수 씨보다 앞서 달리던 광민 씨의 차가 안개 속에서 먼저 버스를 들이받았고 바로 뒤를 따르던 승용차가 광민 씨의 차를 들이받았다.
광수 씨는 차에서 내려 형에게 달려갔으나, 광민 씨는 찌그러진 차량 안에서 "나 좀 꺼내 달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사이 앞 버스에 불이 붙는 바람에 광민 씨는 연기에 휩싸였고, 광민 씨는 119구조대의 구조로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숨졌다.
평택=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당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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