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 입력 2006년 10월 17일 03시 05분


여러분은 여러분을 둘러싼 단단한 껍질을 깨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둘러싼 단단하고도 믿음직한 울타리를 깨뜨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여기에 껍질 안의 세계와 껍질 밖의 세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소년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소설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입니다.

‘데미안’은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1919년에 세상에 내놓은 소설입니다. 원래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는 아주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 중에서 오늘은 ‘껍질 깨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나를 둘러싼 껍질 깨기’이고요, 다른 하나는 ‘세상을 둘러싼 껍질 깨기’입니다.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애쓴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은 새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깨뜨려야만 하는 ‘껍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 역시 수많은 껍질을 깨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엄마의 배 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것도 그러하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생각이 깊어지는 것도 그러하고, 어른이 되면서 새로운 가치 기준이 생기는 것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껍질을 깨는 일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은 두려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갈등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껍질을 깨고 새로운 세상과 만납니다. 그런데 그 껍질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싱클레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뜻하게 보살펴 주시던 어린 날의 세계로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와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싱클레어는 껍질 밖의 세계에 완전히 동화되지도 못합니다. 싱클레어는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외로워합니다. 껍질 밖에는 ‘소외’라는 무서운 괴물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외는 우리를 고립시키고, 고민하게 하고, 외롭게 합니다.

하지만 이 고통 속에 어쩌면 진짜 자기 자신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정말 우러나오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왜 그렇게 어려웠던가?”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껍질에 갇힌 삶을 살고 있나요? 정말 우러나오는 대로 사는 것이 그처럼 힘든 일일까요? 혹시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는 있나요?

책상이나 의자나 신문이나 자동차 휴대전화 컴퓨터 같은 물건들은 그 쓰임새가 먼저 결정되고 물건이 생산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난 후에 살아가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야 합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고민할 줄 아는’ 물건은 없고, 고민할 줄 아는 ‘인간’은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싱클레어의 경험처럼, 그것은 온통 소외와 고민으로 가득 찬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을 찾아라.”

요즘 세상을 ‘익명성의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익명성’으로 특징 지어지는 사회는 자기 자신을 세상 속 깊숙이 파묻어버리고 남들과 구분되지 않는 똑같은 삶을 살아가도 되는 사회이지요. 껍질을 깨고 나오면 자기 자신의 이름을 얻는 대신 고민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그 쌉싸래한 ‘자기 찾기’를 시작해 보시겠습니까?

여러분과 그 뜻을 나누고 싶은 구절이 또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진실을 둘러싼 껍질 깨기와 관련된 말입니다.

“성경의 신화들은 인류의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것들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우리 시대에 맞게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도를 하면 그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신화들조차 과거의 것을 절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시대에 맞게 재해석해야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헤세는 이야기합니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실이 몇 개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진실이 변한다고 생각합니까,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무덤가를 지켜야 한다는 조선시대의 절대적인 규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 외제 신발을 신거나 외제 학용품을 쓰면 벌을 받아야 했던 사실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세상에 진실은 무수히 많습니다. 플라톤의 말도, 공자의 말도 무조건 옳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떤 것이 진실이 아닌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야 알 수 있습니다. 유목민들의 속담 중에 ‘성을 쌓고 안주하는 사람은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적인 진실은 없습니다. 판단과 행동은 여러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선선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부는 지금, ‘껍질 깨기’ 여행을 떠나기 바랍니다.

이수봉 학림 논술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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