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아파트만 지으면 뭘 먹고 사나”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0분


“굴착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기에 불안했는데, 결국 터졌구먼….”

정부가 23일 수도권 신도시 한 곳을 확대개발하겠다고 발표한 후 유력후보지로 거론되는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 이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주민 윤웅덕(70·파주시 교하읍 와동1리)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파평 윤씨 32대 손인 윤 씨는 버티고 버티다 1년여 전 운정신도시 개발에 땅을 내준 뒤 300여 m 떨어진 곳에 새로 집을 지었다. 그러나 신도시가 확대되면 이마저도 다시 수용될 처지에 놓인 것. 평생 농사만 짓다가 거액을 보상받게 됐으니 좋은 것 아니냐고 묻자 윤 씨는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아파트만 지으면 이 지역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 번듯한 공장도 짓고, 대학교도 세워야지. 온통 아파트만 지으면 길 막히고 투기바람만 불 게 뻔하잖우.”

▽2000평 공장도 마음대로 못 짓는 경기도=경기도에는 택지 외에 ‘먹고 살’ 생산시설은 좀처럼 들어설 수 없다. 중앙정부가 ‘수도권 과밀화를 막아 균형 잡힌 국토개발을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규제법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25일 경기도에 따르면 수도권의 중첩규제 때문에 대기업 등 공장 신증설이 되지 않아 4만여 개의 유치 가능한 일자리가 날아갔다. 기업들이 투자하려다 포기한 금액만 34개 기업, 55조8000억 원에 이른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이천시 하이닉스 반도체로 13조 원을 들여 24만여 m² 부지에 6000여 명이 일하는 공장을 증설하려고 했지만 첨단 대기업 공장증설 규제로 투자를 못하고 있다.

세계적 완구업체인 레고그룹은 1999년 이천시에 2억 달러를 들여 18만 평 규모의 놀이동산 ‘레고랜드’를 추진했지만 수도권 관광지 조성면적 제한 때문에 결국 독일로 행선지를 바꿨다.

S학원은 가평군에 1600억 원을 들여 학생 2500명이 다닐 산업대 건립을 추진했지만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자연보전권역 내 인구집중유발시설 입지 금지’에 걸려 포기하고 말았다.

경기도에 대한 규제는 대규모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수출량이 크게 늘어 공장 2000평을 추가로 지으려던 한 중소업체도 공장총량 규제에 묶여 증설하지 못했다. 연간 180억 원의 추가 매출을 올릴 기회가 사라진 것.

▽경기도는 서울의 베드타운?=이미 경기도 내에는 진행 중인 택지개발지구가 58개에 총면적 3100여만 평이고, 수용인구는 145만여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를 비롯해 용인, 김포, 고양 등 조성이 끝난 수십개 택지개발지구와 아직 착공하지 않은 12개 지구를 제외한 수치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23일 수도권 내에 분당 규모 신도시 2곳을 추가 건설하고, 1곳은 확대한다고 발표한 것.

정부는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유로 토지공사, 주택공사 등 경기도 내 49개 공공기관의 타 지방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는 없애면서 생산성 없는 주택만 대거 양산하는 쪽으로 경기도 내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는 것.

경기도 측은 지금 같은 신도시 개발은 극심한 교통난, 환경파괴 등으로 삶의 질 저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며 신도시 건설이 도도 살리고 거주민들의 삶의 질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 수도권정책센터장은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주거단지만 개발하지 말고 산업단지 등 일자리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며 “그래야 신도시 주민들의 장거리 통근에 따른 도로 등의 인프라 구축비용과 교통혼잡 등의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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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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