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처방제 확대추진…약값은 싸지는데 효과는…

  • 입력 2006년 10월 30일 17시 25분


'의사가 약을 고를 것인가, 환자나 약사가 약을 고를 것인가'

정부와 의료계가 약의 선택권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성분명 처방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히자 일부 의료계 인사들은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대부분 의사들이 약품명을 지정하는 약품명 처방제와 성분명 처방제는 어떤 차이가 있고 의료 소비자에겐 어떤 제도가 유리할까. 본보 취재팀은 두 가지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찾았다.

▽가벼운 병에는 성분명=30일 두통·소화불량 증세를 호소하며 서울 강북 지역 A보건소에서 성분명 처방전을, B의원에서 약품명 처방전을 받았다.

A보건소의 성분명 처방전은 '아세트아미노펜 500mg, 메페나믹 애시드 250mg(이상 두통약 성분) 시메티딘 200mg(위장약 성분)', B의원 약품명 처방전은 '부광 싸이메트 정 200mg(위장약), 부광 타세놀 이알서방 1정(두통약)'이라고 쓰여 있었다.

두 처방전을 들고 B의원 근처 약국으로 갔다. 이 곳에서 두 처방전으로 약을 짓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인근 다른 약국에선 약품명 처방전으로 약을 조제할 수 없었다. 이 약국의 약사는 "투자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약품명 처방전의 수요를 충족할 만한 다양한 약품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분명 처방제는 환자가 어느 약국에서나 쉽게 약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성분명 처방제는 주머니가 가벼운 환자에도 제격이다. 동일한 성분의 약은 약품명에 따라 값도 천차만별이다. 성분명 처방전으로 3일치 약을 지어보니 가장 싼 약을 고르면 약값(조제비 제외)은 306원, 가장 비싼 약을 고르면 약값은 1323원으로 4배 가량 차이가 났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이유로 성분명 처방제를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건강보험의 총진료비 가운데 약값의 비중은 2001년 23.5%에서 지난해 29.2%, 신약 등 고가약 처방률이 의약분업 이전 30%에서 50%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무거운 병에는 약품명=고혈압 환자 전모(60·여) 씨는 성분명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찾았지만 약사로부터 "약 종류만 50여 개가 넘는데 증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약의 종류를 정하기가 난처하다"는 말을 들었다. 전 씨의 담당의사는 "가벼운 병은 효과가 검증이 된 약들이 많지만 만성질환은 특정한 약을 지정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어떤 약을 고를지 모르겠다"면서 "의사가 직접 약을 정해주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은 약의 종류도 다양하며 약마다 약효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약품명 처방제가 적절하다는 게 의사, 약사, 환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신중한 접근이 바람직=대한의사협회는 "성분이 같더라도 치료 효과가 다르거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의사의 처방권이 존중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복지부는 "환자가 저렴한 약을 직접 고를 수 있어야 한다"면서 약품 선택권을 강조하고 있으며, 약사들은 투자비용을 낮출 수 있어 이 제도의 추진을 환영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경증질환과 만성질환은 다르기 때문에 의료 소비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이유종기자 pen@donga.com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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