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셰익스피어의 ‘햄릿’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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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옷이 제법 두꺼워졌습니다. 불쑥, 말 한마디 없이 짙은 가을이 찾아왔기 때문이겠죠. 이제 우리나라 산들은 알록달록한 새 옷으로 자신을 꾸미겠지요. 우리 산들이 옷을 바꿔 입는 이때, 낙엽 떨어진 산 속 숲길을 걷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소피가 여러분을 아름다운 숲으로 안내하려고 합니다. 바로 시들지 않는 영혼의 숲, ‘햄릿’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들어온 이름, ‘햄릿’. 그래서 여러분 중에 누군가는 만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햄릿’이라는 거대한 숲은 그렇게 만만한 숲이 아닙니다. 아마 그 숲에 발을 들여놓아 본 적이 있는 친구라면 지금쯤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거예요.

자, 그럼 이제 영혼의 숲을 여행하는 첫발을 내딛기 위해서 몇 번 힘찬 심호흡을 해봅시다. 숲 속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 때문에 진땀을 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 숲을 통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햄릿’은 5막으로 이루어진 희곡입니다. 희곡은 소설과는 다르게 서술자 없이 인물들의 대화와 지문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소설보다 까칠한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이지요.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깊은 맛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상상하듯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잔뜩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여러분은 이미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자, 그럼 산책을 나서 볼까요?

여러분은 햄릿을 어떤 인물로 알고 있나요? 아마도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알고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는 매우 우유부단하고 연약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래서 결국엔 비극적 최후를 맞게 되는 그런 인물이지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는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을 만큼 덕망이 있었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선친의 혼령을 본 이후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분노에 사로잡혀 미치광이 노릇을 하지만 그는 분명 이지적인 왕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겪을 고뇌

햄릿, 온몸으로 보여주다

여기서 잠깐 그의 고민을 엿볼까요?

“모든 일이 사사건건 얼마나 날 꾸짖고/내 둔한 복수심을 찌르는가./인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판 주(主) 소득이 먹고/자는 것뿐이라면, 짐승 이상은 아니다./우리에게 그렇게 넓은, 앞뒤를 내다보는/사고력을 넣어주신 분께서, 그 능력과/신과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썩히라고 주신 건/분명코 아니다. 한데 이 무슨/짐승 같은 망각인지, 혹은 결과를 너무/꼼꼼하게 생각하는 비겁한 망설임인지 (중략) 게딱지만 한 땅 때문에, 온갖 운명과/사망과 위험에 내맡긴다. 진정으로 위대함은/큰 명분이 있고서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명예가 걸렸을 땐 지푸라기 하나에도/큰 싸움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럼 난 어떤가?”

절절하게 이어지는 햄릿의 독백 속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나요? 그의 고독한 읊조림을 파헤쳐 보면, 그는 꽤나 복잡한 관계에 얽혀 있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미칠 듯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자체로서 할 수밖에 없는 고뇌’와 ‘한 나라의 왕자이기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고뇌’, 그 중심에 있지요.

만약 햄릿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햄릿’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햄릿의 고뇌는 단순히 한 개인의 고뇌가 아닙니다. 그의 고뇌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고뇌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인간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묵직한 고뇌를 햄릿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지요.

이처럼 햄릿의 고뇌는 인간 삶의 가치와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는 영혼의 숲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나아가 햄릿은 인간이라는 어설픈 존재가 짊어져야 할 고통을 이해하게 하고, 고민과 고통의 순간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것은 우리들의 영혼을 고결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가요? 여러분의 영혼이 살찌는 소리가 들리나요? 아니, 그런데 도대체 왜 햄릿은 미치광이 노릇을 한 걸까요?

이제는 그의 다른 고민을 엿보기로 해요.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자는 것뿐일지니,/잠 한 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꿈꾸는 것일지도…아, 그게 걸림돌이다.(생략)”

이 대사는 제3막 제1장에서 햄릿이 울부짖으며 외치는 독백입니다. 소피 여러분들은 ‘어, 이게 뭐야’ 하겠지요. “사느냐 죽느냐”가 아니고 “있음이냐 없음이냐”여서 말이지요. ‘햄릿’을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번역된 책을 읽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To be or not to be”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상황에 비추어 이렇게 풀어놓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햄릿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면 과연 어떤 의미로 “To be or not to be”를 외쳤을까요? 그리고 또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는 근원적인 고민일 수도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자기 자신을 채근하는 한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명치끝을 딱딱하게 만든 복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버거워서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칼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과 ‘칼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두방망이질하는, 그러한 정신적 고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것이 맞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이 ‘영혼의 숲’, ‘햄릿’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햄릿’에는 햄릿만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를 사랑한 오필리아도 나오고 권력과 사랑에 눈이 먼 덴마크의 왕, 즉 햄릿의 삼촌도 나옵니다.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찬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 그들을 알 수 있고, 그들 뒤에 숨어 토로하고 있는 햄릿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스산한 가을밤, 찬란한 태양과 변덕스러운 달님이 떠오르는 곳, 영혼의 숲 ‘햄릿’ 속을 거닐어 보기 바랍니다.

이승은 학림 논술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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