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을 1학년 정규과목에 편성… 논술과 친구되게 유도
2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대진고 1학년 4반 교실. 논리학 수업이 진행 중이다.
“댓글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어요. 댓글은 누군가의 글에 대한 ‘반응’이라고 봐야죠. 다시 말해 인터넷 문화를 활발하게 만드는 소통의 요인이에요.”
최서연 양이 인터넷 댓글의 순기능에 대해 의견을 펴자, 이번엔 이정인 양이 말했다.
“서연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잘못을 저지른 한 사람의 신상명세가 인터넷에 올라 그 사람의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 경우가 있었어요. ‘개똥녀’가 그 예였죠. 댓글은 법적인 처벌보다 더 무거운 피해를 주게 돼요.”
이 대목에서 주영기 교사가 나섰다.
“‘토론’은 논의를 통해 더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겁니다. 하지만 ‘논쟁’은 상대의 주장을 꺾기 위해 정면대결을 하는 겁니다. ‘너 죽고 나 살기’죠. 지금 정인이 친구는 좋은 주장을 펼쳤지만,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주장을 시작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이 ‘대화’ 시간이라면 좋은 자세이겠지만, ‘논쟁’에선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죠. 쇼펜하우어는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란 책을 통해 심지어는 ‘논점과 무관한 상대의 약점을 들추라’는 조언까지 했습니다.”
철학 전공교사 3명이 이끄는 일산 대진고의 논술 해법은 논리학 수업이다. 논리학을 1학년생 전원이 배우는 정규 과목으로 편성한 것이다. 1학년 학생들은 이 학교 교사들이 자체 제작한 교재로 매주 2회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또 주 1회 창의적 재량활동시간을 이용해 글쓰기 훈련을 한다.
‘비판적 사고와 표현’이란 제목의 1학년 논리학·논술교재는 그 자체로 학생들 사이에 화제다. 논리적 사고와 논술을 학생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꾸몄다. 커리큘럼부터가 기발하다.
‘사고’와 ‘표현’ 양 분야에 걸쳐 총 30장으로 구성된 교재의 제1장은 ‘싸가지 있는 학교 생활하기’. ‘싸가지가 논리학 제1장에 등장하는 이유’ 4가지를 통해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①싸가지 없으면 좋은 일하고도 욕 먹는다 ②싸가지 없으면 공부 잘 해도 미움 받는다 ③싸가지 없으면 좋은 대학 나와도 취직이 안 된다 ④싸가지 없으면 논리적으로 말해도 동의해 주지 않는다.’
교재는 ‘(싸가지가 없으면) 기껏 논리를 열심히 배웠으면서도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학생이 너무 많아 일단 싸가지 교육이 필요함을 느꼈다. 논리 이전에 싸가지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학생들에게 ‘싸가지=논리학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임을 가르친다.
학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례를 통해 논리학과 논술을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하는 것도 교재의 특징. 예를 들어, 교재 제4장은 학생들이 정수기 방문판매원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아파트의 초인종을 누른 뒤, 정수기를 팔기 위해 상대의 마음을 돌려놓는 말하기 방법을 학생들이 논리적으로 구성해 보는 것이다. 학생들은 논리학 교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사고 및 표현법을 익힌다.
‘①설득력이 있으려면 논리적 설명과 감정적 호소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②따라서 논술문 구성도 논증과 수사학적 기법이 효과적으로 합쳐져야 한다 ③문제에 대한 접근은 상대 파악(판매원의 방문을 귀찮아하는 마음과 동시에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의 혼재)→문제점 찾기(소비자의 방어논리와 감성적 측면에서 빈곳 찾기)→해법 만들기의 순서로 진행한다.’
대진고가 논리학을 1학년 정규수업으로 편성한 것은 논리적 사고가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데 기본이 되는 방법론적 틀을 제공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논리학이 논리적 합리적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과 표현력을 살펴보는 논술시험의 채점 기준과도 맞닿아 있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주영기 교사는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한 오해도 있다. 과학 수학 인문학의 주제를 한데 묶는 ‘종합선물 세트’가 통합교과형 논술의 본질은 아니다”면서 “과학적, 수리적, 인문학적 사고는 모두 논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논리학은 논술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대진고는 보충수업 시간을 이용해 2학년부터는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논술에 대비한 본격 훈련에 들어간다. 논술시험의 절차와 과정을 공부하고 통합교과형 논술에 대비한 논술문을 작성한 뒤 교사의 첨삭지도를 받는 것.
또 3학년이 되면 지원 대학에 따른 일대일 맞춤식 논술수업을 통해 출제 예상문제를 푼다. 논술수업은 담당 교사 3명이 각기 교수방법과 스타일이 다른 점을 고려해 이들 교사의 논술수업을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모두 듣고 첨삭지도 역시 번갈아 받는 윤번제로 진행된다.
1학년 ‘생각하는 힘’ 커리큘럼
Ⅰ. 사고의 첫걸음-오리엔테이션
제1장. 싸가지 있는 학교 생활하기
제2장. 논리! 들어갑니다. 빠져봅시다~★
제3장. 멘사(Mensa)에 도전하다-올바른 추리
제4장. 쇼핑 호스트 체험-논술의 기초
부록1: 소아마비 소연이 이야기
Ⅱ. 논리적 사고
제6장. 논리적 사고, 모두 하고 있는 것
제7장. 올바른 추리-연역
제8장. 올바른 추리-귀납
제9장. 올바른 추리-유비
제10장. 오류
부록2: 2008학년도 서울대 정시논술 예시문항
Ⅲ. 창의적 사고
제11장. 수학적 귀류법
제12장. 자발적 브레인스토밍
제13장. 마인드맵, 생각 따라 정리하기
제14장.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제15장. 새로운 관계 설정하기
부록3: 2007학년도 대학입학 전형계획 주요사항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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