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이사람/‘어머니와 사랑’ 2번째 개인전 여는 전병석 씨

  • 입력 2006년 10월 31일 06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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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밤 10시경 대전 중구 대흥동의 카페 ‘비잔’.

오랜만에 자리를 같이한 친구 K(방송 기자) 씨가 벽면을 가득 메운 서양화를 보고 “그림이 이렇게 많았나”라며 어리둥절해 한다. 주인 이혜경 씨가 “전시회”라고 소개한다.

관람객을 배웅 나갔다는 전시회 주인공 전병석(38) 씨는 잠시 후 들어왔다. 통상적으로 정장을 하는 여느 전시회 주인공과 달리 청재킷과 청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이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다소 어둔했다. 그림을 볼 때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는 지체장애 3급이다.

전 작가를 그림에 매달리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그는 우송공업대 입학 직전인 1987년 3월 장애인 자식을 떠나며 못내 마음을 놓지 못하던 어머니와의 대화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행복하게 잘살아야 한다.”

“행복하게 잘살게요. 먼저 가 계세요, 어머니.”

그는 행복을 위해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1년 전 친구가 개업한 화실에 다녀보지 않겠느냐는 매형의 권유로 그림에 흥미를 느끼던 터였다.

전 작가의 그림 작업은 다른 작가에 비해 몇 배나 힘들다. 손이 떨리기 때문에 전봇대를 그리면서 선 하나 긋는 데 10∼20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보기 시작했다. 아시아미술문화협회가 제정한 권위 있는 공모전인 한국미술문화대상전에 입선한 뒤 동상, 은상을 거쳐 1999년 추천작가에 올랐다. 한중일 정형작가 초대전(1996년)과 남부현대미술제 초대작가전(2005년)에 출품하는 영예도 안았다.

그의 그림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사주지만 1년에 1, 2점은 인터넷 전시 사이트를 통해 판매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작품을 사갈 때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

“모르는 사람이 작품을 사면 기쁘고 흥분돼요. 객관적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자식 기르듯 공들인 작품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그래서 인터넷에서 작품이 팔리면 그림을 가져갈 택배 직원이 올 때까지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그럴 때 택배 직원은 왜 그렇게 빨리도 오는지….

모두 18점이 내걸린 이번 전시회는 2003년에 이은 두 번째 개인전. 전과는 달리 거침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제목은 모두 ‘사랑가’이고 그림마다 두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다. 하나는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이다.

어머니 새를 그려 넣으면서 스스로 대견스러워진다. 가족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고 자립해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열거하는 ‘행복 리스트’는 끝이 없다.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카드 연체는 없죠, 휴대전화도 있죠, 12년된 세피아 승용차도 있죠….”

기자와 K 씨는 “우리는 없는 것만 나열하며 살아왔다”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전 작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행복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17일∼11월 5일. 042-255-0035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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