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송년의 밤’ 행사 장소를 네 번이나 옮겼어요. 점점 더 넓은 데로 옮기는데도 자리가 부족하거든요. 보통 900명 정도 오니까요. 올해도 비좁을까 걱정이네요.”
최고경영자(CEO)와 고위직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면서 ‘파워우먼’들의 네트워크 구축도 남성 못잖게 강화되고 있다. 파워우먼들을 연결하는 그물망의 핵(核)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일부 대학이 운영하는 여성고위자과정이다.
우리나라의 첫 여성고위자과정은 1970년 이화여대에 생겼다. 한국의 첫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당시 법정대학장) 박사가 ‘여성고위경영자과정’이란 이름으로 만든 것.
당시만 해도 ‘사모님 클럽’ 성격이 강했다. 20년 넘게 이영회 살림을 꾸려온 남 간사는 “초기는 수강생 대부분이 고위직 남편을 둔 여성들이었고, 커리큘럼도 경영학보다는 교양 강의 위주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기업, 정부 부처 등에서 현장을 직접 지휘하는 간부급 여성이 늘면서 수강생 구성이 명실상부한 ‘고위직 여성’으로 중심축이 옮겨갔다. 주 연령대도 50, 60대에서 30, 40대로 낮아졌고 최근엔 20대 후반 여성 CEO까지 참여하고 있다. 수강생이 바뀌다 보니 커리큘럼도 재무 마케팅 등의 경영실무 관련 과목이 대폭 강화됐다.
이화여성고위경영자과정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서은정 씨는 “요즘엔 여성들도 직접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는 경우가 많다”며 “‘아내가 사업파트너가 돼 주면 좋겠다’면서 등록 문의를 하는 남편들이 생긴 것도 최근 2, 3년 사이의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기존 고위자과정이 경영 현장 중심으로 바뀌다 보니 기업 이외 분야의 상류층 여성을 위한 교양강의 프로그램이 1990년대 연세대와 이화여대에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6개월 과정의 여성고위자과정 수업은 주 1회 이뤄진다. 수업이 있는 날은 대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를 꼬박 함께 보내기 십상이다. 정규 수업 외 스포츠댄스 국악 컴퓨터 등 다양한 특별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여성고위지도자과정 관계자는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수강생들은 저녁식사도 항상 같이 한다”고 귀띔했다.
모든 과정의 강사진은 각 분야 ‘일급’으로 구성된다.
연세대의 경우 ‘통증을 어떻게 잡을까요’라는 강의는 박창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변화와 혁신’ 강의는 이채욱 GE코리아 회장, ‘발레 이야기’ 강의는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커뮤니케이션’ 강의는 방송인 백지연 씨가 맡는다.
개중에는 이왕에 형성한 인맥을 강화하기 위해 학기를 달리해 한 번 더 과정을 수료하거나 다른 학교의 같은 프로그램에 진학하는 사람도 있다.
과정을 수료한 후엔 기수별 동문회에 소속돼 월례조찬모임, 분기별 수련회, 연중특강 등 각종 소모임으로 네트워크를 꾸준히 유지한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발전기금 모금 등 사회공헌 활동.
이영회가 지금껏 사회와 학교에 기부한 돈은 100억 원에 이른다. 연세대 여성고위지도자과정 동문 역시 기수별로 학교발전기금을 모은다. 많을 땐 한 기수(50여 명)의 모금액이 8000만 원에 이를 때도 있다.
이들이 한 학기 수강생이지만 학교 측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동문들인 이유다.
철도산업업체인 유진기공산업㈜의 경영자이며 2002년 전문경영대상을 받기도 한 김정자(65) 이영회 고문은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 술자리 같은 데서 사람 관계 만들기가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교육의 장에서 여성 CEO끼리 서로 배우고, 여성 후배들에게 사회생활의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것도 삶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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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라희 현정은 문희 윤석화 씨 등 거쳐가
홍라희(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부인),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이인희(한솔그룹 고문), 정희자(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부인), 신정희(㈜동화면세점 대표), 정명금(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이순자(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김을동(전 국회의원), 이미경(열린우리당 의원), 김윤옥(이명박 전 서울시장 부인), 윤석화 박정자(이상 연극인), 강부자 김수미(이상 탤런트), 문희(전 영화배우), 오은미(차범근 축구감독 부인), 박술녀 이영희(이상 한복 디자이너), 박경실(㈜파고다아카데미 대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화려한 면면의 이들 여성은 모두 연세대와 이화여대의 ‘여성고위자과정’ 동문들.
내로라하는 집안 출신이거나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해 명성을 얻은 여성들이 굳이 ‘여성고위자과정’을 찾는 이유는 비슷한 부류의 타 분야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인적 자산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고위자과정에 모두 참여한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씨는 “동문들을 통해 상류층 여성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트렌드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에 작품 활동에 도움이 된다”며 “데뷔 23주년 기념 한복쇼에는 30여 명의 동기를 초대해 자리를 같이했다”고 밝혔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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