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고교와 대학 맞잡은 손, 오래가길

  • 입력 2006년 11월 13일 03시 00분


광복 이후 대학 입학시험 제도는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자주 바뀌었다. 광복 직후 대학별 단독 시험제로 시작한 입시 제도는 그 후 골격이 바뀐 것만 해도 12차례나 된다. 한 제도의 평균 수명이 5년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가 바뀌어도 수험생의 학업 성적을 평가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누가 평가의 주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갈등은 여기서 출발한다.

고교와 대학 평가권 상호 존중해야

평가 주체는 국가, 대학, 고교 세 곳이다. 국가가 평가하는 시험은 연합고사→국가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바뀌어 왔다. 대학의 평가권은 대학별 단독 시험이나 대학별 본고사를 치를 때가 전성기였다. 고교의 평가권은 내신성적이나 종합생활기록부, 학교생활기록부 등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

입시 제도의 변천은 이들 3대 평가 주체 간 주도권 싸움의 역사다. 굵직한 것만 봐도 입시 제도는 대학별 단독 시험→연합고사+대학별 본고사→대학별 단독 시험→국가고사+본고사→대학별 단독 시험→예비고사+본고사→예비고사+내신→학력고사+내신→수능+내신→수능+종합생활기록부→수능+학교생활기록부 등으로 숨 가쁘게 변해 왔다.

국가는 1954년 대학 입학 연합고사 제도를 도입한 이후 대학별 단독 시험 기간인 10여 년을 제외하고는 어떤 식으로든 대학 입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대학과 고교는 본고사가 완전 폐지된 1981년을 기점으로 처지가 완전히 역전됐다. 대학은 있던 평가권마저 모두 빼앗겼으나, 고교는 없던 평가권을 새로 확보했다.

대학이 논술에 주목하는 건 이 때문이다. 본고사가 금지된 이후 대학은 국가와 고교의 평가 자료만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신입생을 선발해 왔다. 그런데 논술을 통해, 비록 성에 차진 않지만, 대학의 평가권을 일부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논술의 목적은 교과 성적으로는 알 수 없는 종합적 사고 능력이나 창의성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대학이 이를 중시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고, 글로벌 교육 추세와도 맞아떨어진다.

문제는 논술의 수준이다. 교육 당국이나 고교에서는 이른바 ‘통합교과형 논술’이라는 게 변형된 형태의 본고사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정상적으로 고교 교육 과정을 이수한 학생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논술을 둘러싼 논쟁은 대학과 고교 양쪽에 모두 책임이 있다. 대학은 모의고사 등을 통해 논술 문제가 이 정도는 돼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고, 고교는 그런 수준의 문제라면 대비가 불가능하다고 ‘엄살’을 부렸다. 고통 받는 건 수험생뿐이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고교-대학 간 대학입학관계자 상호협의회’를 발족한 건 환영할 만하다. 살벌한 대학 입시에서 ‘협의’란 말이 순진한 냄새를 풍기긴 한다.

그러나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협의회는 논술 출제에 교과서를 활용하고, 문제 검토와 채점에 교사의 참여를 권장하기로 했다. 출제 유형과 난이도를 이른 시일 내에 공개하고, 통합 논술교재 개발과 고교 방문 논술특강도 준비하고 있다. 고교와 대학이 ‘윈윈’하는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대학의 협조 여부에 성패 달렸다

문제는 실천이다. 대학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몇 대학이 독주해 버리면 강제력이 없는 협의체는 그것으로 끝이다. 중앙 조직만으론 많은 대학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가 힘들다. 지역별 권역별 협의회 구성도 서둘러 더 많은 대학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각 대학이 협의회에서 한 약속을 공개해서 구속력을 갖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험생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고교와 대학이 손을 잡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협의회에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시늉만 몇 번 하고 잡은 손을 뿌리쳐선 안 된다. 이는 수험생을 배신하는 일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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