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집회는 15일 4시간 총파업을 예고한 민주노총의 사실상의 ‘결의대회’였으나 민주노총은 당초 예정됐던 차도 행진을 자진 철회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최근 경찰청은 민주노총이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세종로 사거리에 대해 ‘도심교통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서울광장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광장과 서울역 광장 등 모두 7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동자대회에 앞서 민주노총 산하 덤프연대와 화물연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80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가졌지만 계획된 차도 행진은 하지 않았다.
덤프연대 측은 당초 마로니에공원에서 종로5가까지 1km를 3개 차로로 행진하고 종로5가에서 서울광장까지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참가자가 늘자 차도 행진을 철회하고 버스로 서울광장과 여의도 문화마당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한 것. 양 연대 측은 점심시간에 집회 참가자들이 폴리스라인을 벗어나 도시락을 먹자 폴리스라인을 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노동자대회에 앞서 서울역 광장에서 30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연 민주노총 산하 공공연맹은 집회 신고 내용대로 폴리스라인을 넘지 않고 2개 차로로만 2km를 걸어 서울광장까지 이동했다.
공공연맹 측은 특히 차도 행진에 앞서 △교통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줄 것 △행진 중 경찰이나 시민을 자극하는 구호는 자제해 줄 것을 집회 참가자들에게 요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 45분가량 걸리던 서울역 광장∼서울광장의 거리 행진이 이날은 30분 만에 끝났다. 박생수 서울지방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장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통제에 협조해 대규모 집회였는데도 심한 정체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는 1만7000여 명이 모였고,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5시 10분경 자진 해산했다.
한편 전·의경부모 모임과 자유주의연대 등 5개 단체는 13일 오전 서울 중구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평화적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집회 시위 3강5륜’ 캠페인 동참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3강은 △평화적 시위문화에 앞장선다 △시민의 도시생활권을 존중한다 △집시법을 비롯한 관련법을 준수한다는 것.
5륜은 △원활한 교통소통에 협조한다 △소음을 최소화한다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는다 △집회 현장을 깨끗이 정리한다 △경찰을 집회 시위의 조력자로 인식한다는 5가지다.
이정화 전·의경부모 모임 대표는 “폭력시위 추방을 위해 법 개정 추진 등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합리적 투쟁’ 힘실린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투쟁 방식과 정부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총은 15일로 예정됐던 무기한 총파업을 유보한 데 이어 12일 대규모 도심 집회도 준법집회로 마무리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스스로 미룬 것은 이례적이며 이날 집회 과정에서도 강경한 행동을 자제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여론을 살피지 않을 수 없으며 집행부가 다양한 (투쟁)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민주노총은 투쟁동력 확보를 놓고 곤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선 조합원의 총파업 지지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데다 한국외국어대 등 장기 파업 현장의 잇단 파업 철회도 강경 투쟁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요인이 됐다.
사상 최저인 10.3%로 내려앉은 한국의 노조 조직률 탓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부르기 민망할 정도”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때문에 큰 틀에서 민주노총이 합리적 온건 투쟁으로 흐름을 잡아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노총의 전 간부는 “정부와 재계가 조금만 도와준다면(민주노총의 방침을 받아들인다면) 내부 강경파를 설득해 대화와 타협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 민주노총의 위원장 선거에서 앞으로의 투쟁 방향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 복귀를 주장하다 강경파의 반발로 자진 사퇴했다.
그러나 올해 2월 보궐선거에서는 이 전 위원장의 온건 노선을 계승한 국민파 조준호 현 위원장이 당선됐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우세했다는 얘기다.
내년 선거에서 온건 노선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정부 및 재계와의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민주노총의 내부 흐름과 국민 여론을 감안할 때 온건파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민주노총의 위원장 선거는 전통적으로 분위기보다 조직에 의해 좌우돼 왔다.
조 위원장은 올해 2월 선거에서 51%의 표를 얻어 47%의 지지를 받은 강경파 김창근 후보를 근소한 차로 눌렀다.
조직 내부의 강경한 목소리도 여전하다.
민주노총 산하 덤프연대 장현수 교육선전부장은 12일 “민주노총 집행부에서 오늘 집회는 평화적으로 하겠다고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준법집회를 했다”며 “경찰이 앞으로 평화적인 집회를 계속 금지하면서 집회 주최 측의 양보만 요구한다면 평화시위가 계속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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