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인 장윤채(58) 씨가 젖먹이 때 전장에 나간 시아버지(당시 26세)의 마지막 소식은 몇 개월 뒤 날아든 한 장의 전사통지서였다. 이후 유해조차 찾지 못해 애태우던 유족들에게 9월 말 희소식이 전해졌다. 강원 홍천 일대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서 시아버지 ‘장복동’으로 추정되는 유해 1구를 발굴했다는 것.
육군 유해발굴단은 현장에서 발견한 유골과 유품 20여 점 중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수통에서 고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수통 한쪽에 뾰족한 물건으로 새긴 듯한 ‘張福東(장복동)’이란 이름이 있었던 것. 유해발굴단은 병적 조회를 통해 고인이 1950년 9월 입대한 뒤 일병이던 1951년 1월 강원 홍천에서 ‘정월 대공세’에 나선 중공군 및 인민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입대 전 고인의 거주지가 전남 여수시 손죽도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여수시에 살고 있는 아들 장 씨를 찾아낸 뒤 유전자(DNA) 검사를 실시해 이달 초 고인의 신원을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 장 씨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며느리 김 씨는 20일 “유해 발굴 소식을 듣고 남편은 아버님이 살아 돌아오신 것처럼 기뻐했다”고 말했다.
육군은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을 벌여 총 1500여 구의 유해와 4만여 점의 유류품을 발굴했으며 이 중 국군 유해로 확인된 1155구를 대전국립묘지에 안치했다. 그러나 전체 발굴 유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52구, 유족까지 확인된 유해는 22구에 불과하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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