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지혜의 숲]위대한 백수 소크라테스

  • 입력 2006년 11월 21일 02시 56분


《책 한권 쓴적 없는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점은 가장 철학적이며 근본적인 물음 ‘그것은 무엇이냐’ 때문이다》

얼마 전 ‘전국백수연합’이라는 단체가 서울시에 등록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청년실업자 연합’도 아니고 ‘백수연합’이라니,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그 이름이 참으로 해학적이어서 오히려 신선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더라도 우리 청년들에게 이 정도의 유머와 여유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쪼록 이들의 활동이 성공하여 ‘백수’와 ‘백조’가 없는 날이 오기를 빌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백수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고대의 그리스 사회는 오늘날처럼 꽉 짜인 산업사회는 아니어서 특정한 직업 없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백수’들 중에 소크라테스라는 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산파였다고 하니 별로 훌륭한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용모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상당히 못생긴 축이었던 모양이다. 들창코(그리스인들에게 들창코는 끝이 들렸다기보다는 콧등이 내려앉아서 코끝만 뭉툭한 것을 말한다)였던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듯 젊었을 때는 돌조각도 했다고 하는데, 착실하게 한 것은 아니었고 아무튼 특정한 직업 없이 아테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주로 얻어먹고 살았다. 잔칫집 같은 데서 먹을 것을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술도 주면 말술로 마셨으나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발도 맨발로 다녔다.

그런 그가 전쟁에 나갔을 때에는 위험에 빠져 쓰러진 청년 알키비아데스를 맨몸으로 들쳐 메고 나온 적도 있었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생각에 빠지면 사흘 밤낮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생각에 잠길 때도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이 공통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우선 그가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전국의 백수들이여 체력을 기르자!). 그리고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생각했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체력과 집중력은 모든 위대한 업적의 원천이다.

이 ‘백수’에게 어느 날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 소크라테스를 좋아하던 카이레폰이라는 사람이 델피의 신전에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느냐?”고 신탁을 요청한다. 신탁이란 원래 매우 애매한 형태를 띠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자는 없다”는 명료한 대답이 나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소크라테스는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는 것이 전혀 없고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자기가 가장 현명하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현명하다고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당신은 이러이러한 것을 잘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ti estin)?”하고 묻는다. 그 사람이 어떤 대답을 하면 그것이 과연 그런지 그렇지 않을 수는 없는지 또 다른 질문들을 던진다. 그런 식으로 대화를 해 본 결과 놀랍게도 그들은 앞에 한 말과 정반대의 말을 뒤에 가서 하고 있었다. 즉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한 사물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어떻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결국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데, 나는 적어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래서 내가 현명하다는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책 한 권 쓴 적이 없는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아버지가 된 까닭은 바로 ‘그것은 무엇이냐?’는 물음 때문이며, 그 물음이야말로 가장 철학적이며 근본적인 탐구방식을 결정하는 물음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소크라테스의 위대한 점은 신탁을 곧바로 믿고 자기가 잘났다고 자랑하며 다니거나 그것을 이용해 자신의 가난을 벗어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연 참인지를 끝까지 밝히려 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움을 사서 맞게 된 죽음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았던 진실된 영혼의 위대함에 비하면 눈앞의 가난쯤이야 참으로 하찮은 것이 아닌가.

최화 경희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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