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라인
빨간색 레이스 카, 그의 이름은 ‘맥퀸’. 그는 경주에서 1등하는 것만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왕중왕’을 가리는 피스톤 컵 대회에 참가해 단독 선두를 달리던 맥퀸은 팀플레이를 마다하고 무리한 레이스를 펼치다 뒤따르던 자동차 ‘킹’, ‘칙’ 등과 공동 1위에 머물게 됩니다.
마침내 진정한 1등을 가리기 위한 최종 챔피언십 레이스가 예고됩니다. 하지만 맥퀸은 경기장으로 향하던 도중 길을 잃게 되죠. 맥퀸이 도달한 곳은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한적한 시골마을 ‘래디에이터 스프링스’. 그곳에서 과거가 베일에 싸인 늙은 자동차 ‘허드슨’, 똑 부러지는 성격의 어여쁜 포르쉐 ‘샐리’, 고물 견인차 ‘메이터’ 등을 만난 맥퀸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뜹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카’의 주제를 따져보기에 앞서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왜 하필 주인공은 경주용 자동차일까?’
레이스 카의 존재 목적이 뭔가요? 가장 빨리 달려서 경기에서 우승을 하는 것입니다. 속도, 즉 스피드(speed)가 생명이죠. 주인공 맥퀸의 별명이 ‘번개’란 뜻의 ‘라이트닝(lightning)’인 점도 속도를 최고 가치로 삼는 주인공의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요약하자면, 맥퀸의 삶은 ‘스피드’ ‘경쟁’ ‘1등’ ‘돈과 명성’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죠.
맥퀸의 이런 인생관은 래디에이터 스프링스라는 이상한 시골 마을을 경험하면서 180도 달라집니다. 이 마을 자동차들은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듯 느릿느릿 살아가는 여유를 만끽하고 있죠. 이후 맥퀸은 △‘스피드’ 대신에 ‘느림’ △‘경쟁’ 대신에 ‘협조’ △‘1등’ 대신에 ‘친구’ △‘돈과 명성’ 대신에 ‘사랑과 화해’가 인생의 진정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여기서 ‘더불어 사는 삶’이나 ‘느림의 가치’와 같은 문구들을 주제로 떠올릴 수 있겠죠.
하지만 여기서 생각을 멈춰선 안 됩니다. 이 영화가 ‘느린 삶’이나 ‘남과 함께 하는 삶’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은 은인자중(隱忍自重·참고 견디면서 몸가짐을 신중히 함)하며 시골마을에 사는 ‘레이스의 전설’ 허드슨, 그가 맥퀸에게 들려주는 다음 조언 속에 이 영화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자네만의 속도감을 찾아야 해….”
맞습니다. 빠른 삶도 아닙니다. 느린 삶도 아닙니다. 자신만의 속도감을 지켜가는 삶, 다시 말해 자신의 분수에 맞는 목표와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안분지족(安分知足·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이 갖는 삶의 가치를 영화는 진정 전하고자 했던 거죠. 시골마을의 작고 낡은 차들이 저마다에게 주어진 역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듯이 말입니다.
[3] 더 깊게 생각하기
‘카’는 자동차를 의인화(擬人化·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함)함으로써 인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빛나는 세계관을 숨겨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사물이나 대사들에 어떤 함의(含意·숨은 뜻)가 녹아있는지를 간파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카’ 속에 숨은 인생의 진리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볼까요.
①길(road)=길은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합니다. 그러나 맥퀸이 달려왔던 레이스용 길은 진정한 인생이라고는 볼 수 없죠. 타인에 의해 잘 닦여져 있고, 뻔히 앞이 내다보이며, 늘 반복되고, 그저 앞으로 질주하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길이니까요.
시골마을 래디에이터 스프링스에서 맥퀸이 난생 처음 달려 보는 구불구불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야말로 인생 그 자체입니다. △한치 앞에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생) △때론 가고자 하는 의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차가 꺾인다는 점(=욕심대로 되지 않는 인생) △딱 한 바퀴로 결정이 난다는 점(=단 한번 뿐인 인생)은 모두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죠.
그러니까 “브레이크를 너무 세게 잡지 말고 잡았다 놓으면서 그 힘으로 달려!” 라는 허드슨의 조언 속엔 ‘순리대로 사는 인생’을 강조하는 가치관이 드러납니다. 허드슨의 말대로 “비록 출발이 늦었을지라도 포기하기보다는 끝까지 가보는 게 진정 중요한”(‘Better late than never!’) 것이 바로 인생이니까 말이죠.
②거울(mirror)=매퀸에겐 헤드라이트가 없습니다(매퀸의 헤드라이트는 진짜가 아니라 헤드라이트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은 것입니다). 그건 매퀸이 앞을 예측하기 힘든 어둡고 컴컴한 길(=인생)을 결코 달려본 적이 없다는 걸 의미하죠. 진짜 인생은 어둠이 깔린 밤길을 한발 한발 거닐 듯 늘 잠재된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매퀸에게 사이드미러(후면을 비추기 위해 앞좌석 양 옆에 붙어있는 거울)가 없는 점도 잘 음미해 보세요.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매퀸의 인생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골마을의 낡은 견인차 메이터를 보십시오. 그는 비록 느린데다 녹까지 슬었지만 사이드미러를 보면서 귀신같은 솜씨로 후진을 할 수 있어요. 이는 메이터가 인생의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진정한 여유를 가졌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죠.
영화 클라이맥스 기억나시죠?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정지하는 맥퀸. 우승을 포기한 그가 사고로 내동댕이쳐진 동료 자동차 ‘킹’을 돌보기 위해 난생 처음 후진을 하는 순간은 정말 감동이에요, 감동! 이젠 맥퀸이 ‘뒤돌아 볼 줄 아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진정 깨닫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장면이니까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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