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은 ‘많이 아는’ 학생보다 ‘잘 아는’ 학생을 좋아한다. 지식이 많아도 생활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헛똑똑이’일 뿐이다. 눈앞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낄 줄 아는 지적 소화력, 이것이 ‘잘 아는’ 학생의 특징이다.
살아 있진 않으나 수준 높은 내면을 가진 것으로 문화재만 한 것이 또 있을까.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문화재와의 교감도 달라질 터. 이 책을 따라가며 말 없는 사물들을 훌륭한 스승으로 바꾸어 보자. 쌓아 온 지식이 살아 연결될 때 내 안의 지적 근육도 탄탄해질 것이다.
문화재와 친해지는 법부터 배워 보자. 표정을 읽으면 마음이 보인다. 신라의 ‘얼굴무늬 수막새’에서 언니 같은 일상의 미소를 만나 보라. 보고 있자면 처마 끝 수막새마다 새겨졌을 담백한 미소가 지붕 따라 가득한 골목길 장면이 떠오른다. 상상의 힘은 옛 신라인들의 명랑한 심성을 단번에 공감하게 해 준다.
장점을 찾는 관심도 필요하다.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청룡과 백호의 몸통 선은 나이키 로고의 곡선과 일치한다. 그것의 곡선은 빠르고 힘찬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보여 주는 각도다. 7세기 고구려의 날렵한 선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모던 스타일을 만나 보라. 미래를 향한 고구려인의 진취적 기상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문화재와 친해지면 숨은 유머가 튀어나와 우리를 유쾌하게 한다. ‘백자철화 끈무늬병’은 몸통을 타고 흑갈색 끈무늬 하나가 무심한 듯 그려져 있다. ‘술을 마시다 남기거든 허리춤에 차고 가시오.’ S자 끈무늬가 전해 주는 도공의 마음 덕에 살짝 웃게 된다.
문화재의 예술성을 따지다 보면 선조들의 정신과도 만날 수 있다. 수염부터 코털 한 올까지 섬세하게 그려 냈던 윤두서의 ‘자화상’은 자기 성찰을 위한 선비들의 성실성을 오롯이 보여 준다. 김정희의 ‘세한도’와 정약용의 ‘매조도’는 유배지에서 느꼈을 그리움과 인간적 체취를 담고 있다. 김정희의 매서운 강직성, 정약용의 아련한 슬픔에 공감하고 나면 그들의 사상과 철학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문화재의 아름다움은 과학의 지혜도 켜켜이 품고 있다. 경북 영주시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름답게 고개를 들고 있는 추녀 곡선, 유려한 흘림선의 기둥으로 유명하다. 눈의 ‘착시현상’을 이용하여 직선 건물의 시각적 왜곡을 교정하려는 절묘한 아이디어 덕분이다. 김치냉장고가 울고 갈 ‘석빙고’도 다시 보자. 선조들은 겨울에 저장한 얼음을 1년 내내 냉각시켜 이용했다. 공기를 순환시켜 온도와 습도를 조절했던 과학적 시스템이 놀라울 따름이다.
혹시 박물관의 유물들이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에서 저자가 내미는 손을 잡고 그들에게 다가가 보자. 지혜로운 가르침과 유쾌한 웃음이 넘쳐 나는 멋진 체험이지 않겠는가.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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