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이 올해 7월 부임하자마자 입학본부에 한 말이다. 한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글로벌 리더로 클 잠재 역량을 가진 학생을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하라는 주문이었다. KAIST는 숨겨진 다이아몬드 발굴의 첫 사례로 과학고생도 외국어고생도 아닌 실업고생을 선택했다.
주인공은 특성화 실업고인 경기 하남시의 한국애니메이션고 컴퓨터 게임 제작과 지승욱(18) 군. 실업고 출신이 KAIST에 입학한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1995년 입학자는 성적이 우수해 일반전형으로 들어왔다.
지 군은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자를 특별전형 대상으로 삼는 KAIST 입시요강을 보고 문을 두드렸다. 그는 ‘3D를 활용한 뮤직박스 스튜디오’로 올해 8월 제23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교수 12명으로 구성된 KAIST 학생선발위원회는 더욱 심도 있는 심사에 들어갔다. 올림피아드 입상은 특별 전형의 자격요건일 뿐 실제 전형에서는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일단 계량적 평가로는 합격이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다. 학교 내신은 중간 정도. 수학과 과학 성적은 좋은 편이지만 학력 수준이 높지 않은 편인 실업계 고교의 특성을 감안할 때 가중치를 높게 줄 수 없었다.
학생선발위원회는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 대회 입상 실적, 생활기록부, 동아리활동상, 봉사활동 등 지 군에 관한 자료(우수성 입증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위원들은 지 군이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하고 중학교 시절 간단한 컴퓨터게임을 만들어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격론이 오간 심사위원들 간의 토론을 통해 비계량적 평가에서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성, 집중력이 뛰어나 미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 군이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비계량적 평가가 2007학년도 전형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그 비중은 무려 50% 안팎이다.
이번에 새로운 전형의 혜택자는 모두 20명이지만 지 군처럼 잠재역량만을 보고 뽑은 사례가 없다.
KAIST는 이들의 창의적 학습을 돕는 한편 수학과 물리, 화학 과목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대학원생에게 조교 수당을 주고 개인지도 하도록 하는 ‘개인 가정교사 시스템’을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과학고 출신들도 과락을 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형을 ‘미래대기(未來大器) 발굴 작업’이라고 부른다는 KAIST 권동수 입학본부장은 “기존의 전형은 논란과 실패 위험은 적지만 창조적인 인재 발굴에는 적합하지 않다”며 “새 전형이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중 1명이라도 ‘빌 게이츠’가 된다면 국가적인 축복 아니냐”고 말했다.
지 군의 담임인 김영철 교사는 “이런 전형이 확대되면 특정 분야에 일찍이 창조적인 재능을 보이는 학생들이 고교 상급반으로 진학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에만 매달리는 안타까운 현실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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