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그림움을 꾹 꾹 눌러 55년만에 쓰는 편지

  • 입력 2006년 11월 29일 06시 33분


‘55년 전의 당신을 오늘 불어(불러) 봅니다. 떠나면서 곳(곧) 돌아오겠다던 당신은 오늘까지 그름자(그림자)도 보이지 안아(않아)….’

경남 남해군 고현면 대사리 박상엽(75) 할머니가 6·25전쟁 당시 사별한 남편에게 쓴 편지다. 맞춤법은 더러 틀리지만 그리움이 절절하다.

주간 ‘남해시대’는 “박 할머니가 남해군이 시행한 ‘한글 글짓기 대회’에서 금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최근호에서 보도했다.

남해군은 지난해 11월부터 마을을 방문해 경로당과 회관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찾아가는 한글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박 할머니도 이 교실에서 비로소 한글을 깨쳤다.

이 대회에는 310명이 ‘작품’을 냈으며 딸에게 편지를 쓴 차선심(73) 할머니가 대상을 받는다. 다른 50여 명은 은상과 장려상, 특별상 등을 수상한다. 시상식은 다음 달 4일.

박 할머니의 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늙으신 부모와 4개월 된 아들을 맛겨(맡겨) 두고 떠난 후… 작은 농사지으면서 아들 공부시키기가 십지 안아(쉽지 않아)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도 하며….’

18세에 결혼한 박 할머니는 3년 뒤 홀몸이 돼 억척스럽게 살아왔으며, 아들은 현재 금융기관 간부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할머니는 편지 말미에 ‘우리가 만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잇을가요(있을까요)? 훈날(훗날) 당신 찾아 하늘나라 가면 나를 찾아 주소. 만날 때까지 편이(편히) 게싶시요(계십시오). 당신 아내가’라고 적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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