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술비타민]통합 교과형 논술 정체 밝히기(3)

  • 입력 2006년 12월 5일 03시 04분


《논술에서 우수 답안, 즉 A급 답안은 창의적인 답안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통합교과형 논술은 바로 이러한 창의력을 중요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력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정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논술의 창의력, 무엇을 말할까?

현상을 다른 각도로 보고 색다르게 응용해보길

창의력이란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창의적’이라는 말을 쓰는 두 표현을 구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창의적 발상’과 ‘창의적 문제 해결’이라는 표현입니다. 이 둘 중에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요?

‘창의적 발상’이라고 답했다면 제대로 대응한 셈입니다. 문학이나 예술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해 내는 것이 중요하고, 때로는 엉뚱하고 기발한 생각을 해 내는 것도 창의적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창의성을 ‘발산적 창의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술에서는 창의적 발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창의적 문제 해결능력입니다. 이때 창의성은 어떤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가진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고도의 응용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은 항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닥치는 문제들은 이미 가진 지식만으로 직접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격차를 메워 넣고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미 가진 정보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여 그 가치를 극대화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논술이 말하는 창의력입니다. 그냥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수렴적 창의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창의적 문제 해결에서는 관점 전환 능력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해서 재해석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새로운 관점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는 결국 다른 영역에서 활용되던 것을 그 영역을 넘어 새롭게 적용해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화’와 ‘유전자 결정’이라는 관점을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나 도덕에 적용해보면 사회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기는 것이 하나의 예입니다. 이렇게 한 영역에서 배운 내용을 그 영역 안에 두지 않고 필요할 경우 영역의 벽을 넘어 다른 영역에 응용해보는 것, 이것을 ‘영역 전이성’이라는 말로 표현해 본다면, 이 말이 논술의 창의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영역 전이성은 통합 교과의 핵심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국사 시간에 배운 내용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어 시간에 문학 작품 해석을 시도하듯이, 한 교과에서 배운 것을 그 교과의 내용으로만 보지 않고 다른 교과에 활용하고 응용할 수 있는 것이 통합 교과의 핵심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관점 전환과 영역 전이성은 유사한 내용이기에 창의성은 일상생활에서는 새로운 관점을 적용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좋은 사례입니다. 엘리베이터는 한동안 계속 속도를 높이는 데에 주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빨라졌지만 계속 빨라지기는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추진기관을 통해 날아서 가는 것이 아니라 줄로 잡아당겨야 하기 때문에 속도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더 빠른 엘리베이터를 원하는 고객의 요구가 부담으로 다가올 때, 새로운 접근법이 등장합니다. 속도라는 관점에서 다른 관점으로 관점 전환을 시도합니다. 빨라져도 1분 이하의 차이이기 때문에 속도에 대한 고객의 요구가 일의 효율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결국 아무 할 일없이 멍하게 있어야 하는 지루함, 낯선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어색함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빠른 엘리베이터를 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각자에게 할 일을 주면 지루함과 어색함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방법을 찾게 되고, 고민 끝에 엘리베이터 벽에 거울을 달거나 거울처럼 비치게 벽을 제작하는 방안을 내어놓게 됩니다.

이렇게 하자 거울을 보면서 각자 옷차림도 점검하고 생각도 하다 보니,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지만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속도라는 관점에서 할 일을 준다는 관점을 전환해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창의력을 기를 수 있을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의외로 가까운 곳에 좋은 길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매일매일 보는 교과서의 주관식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행 교과 과정은 통합 교과를 여전히 기본 원리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통합 교과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교과서를 한 단원 마칠 때마다 등장하는 생각해 볼 문제, 익힘 문제, 활동 문제 등의 주관식 문제입니다.

이것들은 대체로 배운 지식을 복습, 확인하는 문제라기보다는 배운 내용을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고 활용해보는 심화응용 문제들입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지금까지는 여러 이유 때문에 이 주관식 문제를 학교에서 거의 활용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적절히 활용하여 교과 내용을 토대로 창의적 사고 훈련을 하면서 교과별로 한 단계만 더 나가면, 통합 교과형 논술 대비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등잔 밑이 정말 어둡지요?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 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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