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씨는 간첩 혐의자들이 대개 해외에서 포섭되듯 1987년 미국에서 미주신문기자로 일할 때 재미교포 김형성(가명)에게서 ‘주체사상선집’ 등 북한 원전을 빌려 읽으면서 포섭됐다.
미국 유학파로 국내 대기업과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근무한 탓인지 그의 언행은 자유분방했다. 국내로 들어와 정보통신 업체 사장으로 일하면서 카지노를 드나들며 돈을 탕진했고 큰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 씨는 조사 과정에서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가 변하면 안 되고, 남한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장 씨는 또 최첨단 정보통신 장비를 잘 이용했다. 해외에 서버를 둔 e메일을 이용해 북측에 보고했고 문건을 저장할 때 플로피디스크와 휴대용 저장장치인 USB를 활용했다.
그러나 자유분방한 면모는 간첩으로 활동하기엔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통상 간첩 혐의자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관련 문건을 폐기하는 것과 달리 장 씨는 1만5765건의 파일이 담긴 USB 4개를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다가 공안 당국에 압수당했다. 이 때문에 공안 당국에 체포된 다른 관련자들은 이 같은 장 씨의 허술한 행동을 원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초기 묵비권을 행사하던 장 씨는 압수물을 들이대자 의외로 빨리 혐의를 시인했다. 그래서 수사팀 안팎에서는 “장 씨의 당에 대한 충성도가 너무 약하다”, “신세대 간첩 같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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