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부에서 한 보육원을 골라 매달 25일이면 무작정 방문했다. 1년쯤 보육원을 찾았을까. 어느 날 원장이 그를 조용히 불렀다.
“음식 같은 것을 가져오지 말고 차라리 돈으로 주세요.”
노골적인 요구에 반감이 치솟았다. 결국 발걸음을 끊고 말았다.
그의 첫 기부경험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그렇게 끝났다.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혀 다른 보육원도 알아봤지만 사람에게 입을 상처가 두려워 다시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 나 자신을 채우기 위해 기부한다
유 씨는 지난해 5월, 불발로 끝났던 나눔을 다시 시작했다.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수익의 일정 부분을 내는 후원자가 된 것. 이제 유 씨는 매달 자신이 영화배우로서 버는 돈 일부와 자신이 만든 공연제작사 ‘유무비’ 수익의 일부를 계좌를 통해 꼬박꼬박 입금하고 있다.
“배우들이 멋져 보이지만 사실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항상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자신이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어요. 내 능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오히려 자존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죠. 저는 고백하건대 저 자신을 채우기 위해서 기부를 합니다.”
그는 올해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 영화 스태프의 복지에 관한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는 제작자도 아니고 스태프도 아닌 자리에 서 있어요. 하지만 스태프와 함께 일하기 때문에 그분들이 힘들면 저도 힘들죠. 결국 사회복지학도 나 자신을 돕기 위해서 배우는 것일 뿐이에요.”
그래도 첫 수업을 시작하고 30분까지는 자신이 왜 강의실에 앉아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곧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보육원 어린이에게 5000원을 준다면 그게 주는 사람한테는 기부일 수 있지만, 받는 사람에겐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기부에 대한 오해도 풀렸고 제대로 알고 기부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어요.”
그는 한국에 기부 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아 사람들이 기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기부를 통해 마음을 채운다는 정서적인 측면 외에도 세금 등 기부에 따르는 정책적인 혜택이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는 것.
○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기부
“예술적 재능을 갖춘 사람은 일찍부터 문화적 혜택을 받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타고난 환경 때문에 그런 혜택을 누릴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이 많죠. 어린이들의 경우 환경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 씨는 정기 기부 외에도 올해 7월과 8월 수재민과 가정 폭력 피해여성을 돕기 위해 각 3000만 원과 1000만 원을 기부했다.
“신애라 선배가 국제아동구호기구인 ‘컨페션’ 홍보대사를 맡고 차인표 선배도 후원하는 것을 봤는데, 좋아보였어요. 난민이나 대인지뢰제거문제에 관심이 많은 앤젤리나 졸리처럼 말이죠. 물론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저는 배우인데, 혹시나 배우가 정치적인 성향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죠.”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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