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보호가 필요한 비정규직이나 영세 기업의 근로자는 대부분 노조원이 아니다.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거의 노조가 결성돼 있어서 노조가 기득권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갈수록 차갑게 변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떨어지지만 한국 노사관계의 갈등 수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외국기관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는 사용자의 노사관계 만족도가 평가대상국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노사분규로 인한 근로 손실 일수 등 객관적인 지표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에 속할 정도로 많은 편이다.
외국인 투자의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 문제와 갈등적 노사관계인 것으로 여러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해 한국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갉아먹고 한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한국 기업의 국제경쟁력도 심각한 위기다. 단기적으로는 유가 인상과 원화가치 상승으로 인해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노동력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패기와 도전, 개혁보다는 안정과 현상유지로 기울어 저성장시대로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와 사가 모두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노사 협조의 사례를 보면 노사 양측의 위기가 개혁을 위한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위기가 있어야 변화의 필요성을 직감하게 되고 노사 양측이 그간의 행동 양태에서 변화를 모색한다. 위기가 없으면 변화할 이유도 없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위기상황이 노사 모두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노총의 움직임은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주목할 만하다. 6월에는 산업자원부와 함께 뉴욕에서 한국경제설명회를 열었고, 지난달 말부터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KOTRA와 유럽을 방문했다. 이런 움직임은 그간 한국의 노동운동이 ‘죽을 때까지 파업(Strike to Death)’하는 식으로 보도하던 해외 언론의 시각을 불식시킬 수 있다.
악화되는 경영 환경을 타개하려고 노사관계의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의 움직임 또한 눈길을 끈다. 노사가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경영위기를 극복한 노루페인트, 만성분규 사업장으로 파국을 맞았다가 매각된 후 노사 협조로 생산성을 높이고 정리 해고된 근로자를 복직시킨 GM대우, 망해 가는 기업을 살려 내기 위해 임금 동결로 설비 현대화 자금을 조달하고 흑자로 돌아선 창원특수강 등은 생산적인 노사관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위기가 개혁과 변화를 위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책임 있는 노동조합주의(Responsible Unionism), 역지사지와 협력의 정신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이뤄 낸 기업의 사례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노와 사의 새로운 실험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전파될 때 한국의 노사관계는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김동원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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