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의료소송을 제기한 유족에게 물었다. 원고 측은 자신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는데도 담당 의사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유족 대표는 “의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소송을 취하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몇 년 전 서울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결국 유족 측은 의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소송 초반만 해도 화해나 조정이 불가능해 보였던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된 것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의료사고 예방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입증 책임(입증을 하지 못할 경우 패소하게 되는 책임)을 의사 측이 지도록 한 것이다.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입법 취지대로 의료사고나 의료분쟁이 예방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의료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의료기관 측은 진료과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누가 진료해도 동일한 진료가 가능하도록 ‘표준 진료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또 실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진과 의료기관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의료분쟁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의료분쟁을 없애기 위한 확실한 해결책은 의료사고를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의료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제에서는 유능한 인재가 수술 난도가 높은 분야를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이 힘들고, 위험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산부인과나 흉부외과 등에는 전공의마저 부족한 현실에서 의료사고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2006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5년 전국 법원에 제기된 의료소송은 1166건으로 집계됐다.
의료분쟁을 줄이기 위한 법을 고민하기 전에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국민 모두 현행 건강보험 수가체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신헌준 변호사 j00n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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