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행각에 살인까지…무기수로 전락한 탈북자

  • 입력 2006년 12월 13일 17시 39분


북한군 출신 탈북자가 귀순 17년 만에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황해도 출신인 신모(38) 씨는 북한군 중사이던 1990년 중부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했다. 이듬해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신 씨는 정부의 지원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으며 북에 두고 온 부모와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란하던 남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파트 중도금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자 강도 행각에 나선 신 씨는 1995년 충북 충주댐 근처에서 데이트 중인 남녀를 공기총으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신 씨는 지난해 만기출소했으나 아내가 반길 리 없었다. 결국 전북 익산, 부산 등지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올해 7월 오징어잡이 배를 탈 생각으로 강원 동해시로 향했다.

여관에 짐을 푼 신 씨는 주변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 식당 주인 A(52·여) 씨와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됐고, "고향이 어디냐"라고 A 씨가 거듭 캐묻자 탈북자임을 털어놨다.

A 씨가 "당신 간첩 아니냐, 부모님을 놔두고 어떻게 혼자 내려올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자 격분한 신 씨는 맥주병으로 A 씨의 머리를 내려치고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심지어 숨진 A 씨의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용호)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신 씨가 탈북자로서 자기 때문에 고생할 부모와 여동생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온 점은 인정되지만 인간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1심의 양형은 적정하다"고 판결했다.

정효진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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