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출신인 신모(38) 씨는 북한군 중사이던 1990년 중부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했다. 이듬해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신 씨는 정부의 지원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으며 북에 두고 온 부모와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란하던 남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파트 중도금을 마련하는 게 여의치 않자 강도 행각에 나선 신 씨는 1995년 충북 충주댐 근처에서 데이트 중인 남녀를 공기총으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신 씨는 지난해 만기출소했으나 아내가 반길 리 없었다. 결국 전북 익산, 부산 등지에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올해 7월 오징어잡이 배를 탈 생각으로 강원 동해시로 향했다.
여관에 짐을 푼 신 씨는 주변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 식당 주인 A(52·여) 씨와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됐고, "고향이 어디냐"라고 A 씨가 거듭 캐묻자 탈북자임을 털어놨다.
A 씨가 "당신 간첩 아니냐, 부모님을 놔두고 어떻게 혼자 내려올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자 격분한 신 씨는 맥주병으로 A 씨의 머리를 내려치고 목 졸라 숨지게 했다. 심지어 숨진 A 씨의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김용호)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1심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신 씨가 탈북자로서 자기 때문에 고생할 부모와 여동생을 늘 마음에 두고 살아온 점은 인정되지만 인간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죄를 뉘우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1심의 양형은 적정하다"고 판결했다.
정효진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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