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오후 인천 부평구 산곡동 원적산길 434 명신여고 본관 3층 학생자치법원. 검은색 법복을 차려 입은 1, 2학년생 8명이 들어섰다.》
생활태도 불량으로 교사에게 받은 벌점이 30점을 초과해 기소된 1학년 김모(16) 양에게 벌을 주는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모인 것.
검사와 판사, 변호사 역할을 담당한 학생들은 기소된 1학년 김 양에 대한 신문, 변론 과정을 거쳐 교내봉사활동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자치법원장을 맡고 있는 2학년 정민영(17) 양은 “후배와 친구를 벌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규정에 따라 엄격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자치법원이 생긴 뒤 벌점을 받는 학생이 줄고 수업 분위기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명신여고는 올해 8월부터 각종 교칙을 위반했거나 생활태도가 나빠 벌점이 누적된 학생에 대해 학생 스스로 벌을 내리는 제도인 ‘학생자치법원’을 운영하고 있다.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학교생활을 통해 책임감과 함께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주기 위해 도입했다.
판사부와 검사부 변호사부 법원서기 등으로 나뉜 자치법원의 구성원은 모두 16명.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3학년생을 제외한 1, 2학년생을 대상으로 6월 교내 사법시험을 치러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뽑았다. 시험내용은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에 나오는 법에 관한 일반 상식.
선발된 학생들은 자치법원 운영에 앞서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은 뒤 인천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대검찰청에서 행정업무를 체험했다.
교사나 선도부 소속 학생에게 받은 벌점이 30점을 넘으면 모든 학생은 자동으로 자치법원에 기소된다.
교사가 참가하지 않고 비공개로 진행하는 자치법원의 판결은 학생들 사이에 절대적인 권위를 갖기 때문에 교사도 내용을 번복할 수 없다.
학생부장 황우식(42) 교사는 “교사의 체벌이나 감정적 대응 등으로 빚어질 수 있는 학생들에 대한 인권 침해를 막는 효과가 있다”며 “재판에 회부된 학생도 자치법원이 내린 결정을 따른다”고 말했다.
1971년 명신여자상업고등학교로 개교한 뒤 1987년 인문계로 전환한 이 학교는 올해 치러진 제48회 사법시험에서 졸업생 3명이 최종 합격해 화제를 모았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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