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보다 더 뜨거웠던 母情

  • 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화재 속에서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자녀를 구하려다 숨진 권 씨의 영정.
화재 속에서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자녀를 구하려다 숨진 권 씨의 영정.
“궂은일 다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않고 아이들 키우던 당신인데…. 내가 이제 아이들 지킬게.”

20일 부산 동래구 온천3동 광혜병원 영안실. 아내 권혁금(46) 씨를 화마(火魔)에 빼앗겨버린 박인호(47) 씨는 “그렇게 선하게 살던 당신이 왜…”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박 씨가 세 들어 사는 온천3동 단독주택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19일 오후 7시 반경. 경남 양산의 직장을 떠나 부랴부랴 집에 도착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난 뒤였다.

아내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있었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말이 통했던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떠난 줄도 모르는 아들(15)은 병원 침대에 누워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아내 권 씨는 집에 불이 나자 정신지체장애가 있는 아들과 딸(18)을 살린 뒤 자신은 끝내 불길을 헤쳐 나오지 못했다.

“자식한테 지극정성이었습니다. 남들과 다르지 않게 키우고 싶어 아들을 일반 중학교에 입학시킨 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하교를 시켰지요. 초등학교만 졸업한 딸은 장애가 심해 아내가 직접 집에서 가르치며 사회성을 길러 줬어요.”

권 씨는 이날 불이 나자 딸을 먼저 집 밖으로 대피시킨 뒤 출입문 반대편 욕실로 간 아들을 구하러 다시 들어갔다가 연기에 질식돼 쓰러지고 말았다.

안방과 작은방 등 10평 남짓한 집 내부는 다정스럽게 찍어 걸어 두었던 가족사진 한 장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불에 타 버렸다. 그러나 온몸을 던져 불길 속에 뛰어든 어머니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욕실에는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아들은 얼굴에 2도 화상만 입은 채 발견됐다.

권 씨 가족은 경남 김해에서 살다가 특수교육 기관인 발달장애연구소가 있는 부산으로 11년 전 이사했다.

권 씨는 아들과 딸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병원과 장애인학교 등을 오가며 재활을 시도했다. 그러나 남편 박 씨의 한 달 소득 150만 원으로는 자식들의 특수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식들을 장애 없는 아이들처럼 키울 수 있다는 일념으로 권씨는 화장품 외판원, 우유 배달원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런 와중에도 딸의 끼니를 챙겨 주기 위해 점심때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하교시간이면 교문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이런 권씨의 모습에 감동해 학교 측이 모범 학부모상을 주기도 했다.

이웃주민 김모(44) 씨는 “최근에는 권씨가 살이 찐 딸의 체중을 조절한다며 저녁마다 인근 학교에서 함께 달리기를 했다”며 “자식들에게 애정이 깊었고 가난하지만 화목하게 살아온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빈소로 달려온 손위 동서 김정숙(56) 씨는 “천사처럼 살던 동서가 왜 먼저 가야 하느냐”며 고개를 숙였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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