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이필상 제16대 총장의 취임식이 21일 오전 김정배ㆍ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과 정창영 연세대 총장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내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총장은 취임사에서 “지식과 정보의 시대를 맞아 창조적 지식 생산자로서 요구되는 대학의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세계적 학자를 초빙하고 최고의 연구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산학협력을 통해 협동연구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대학의 운영은 구성원의 개성과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정부는 과도한 규제와 재정압박을 풀어야 하고 사회는 대학의 창조적 일탈에 포용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고려대가 세계 명문대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아닷컴>
다음은 2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이필상 총장의 인터뷰 기사
▼이필상 “우리 지식 수출할 정도로 학문 수준 높일 것” ▼
이 내정자는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고 있는 국내 사학의 대표 주자인 고려대의 살림을 떠맡은 것에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전략에 대해서는 차분히 설명했다.
―두 번째 총장 선거에 도전해 내정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100년 된 대학의 총장이 되고 보니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낍니다. 교직원은 물론 고려대에 애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동문 및 사회 각계와 힘을 합쳐 열심히 뛸 각오입니다.
서울대 출신인 이 내정자는 “내가 다른 학교 출신이라고 차별을 느꼈다면 총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만큼 고려대는 열린 학교”라고 말했다.
―지난 4년간 고려대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학교 이미지도 바뀌고 경쟁력도 높아졌다는 평가입니다.
“한국의 고려대가 아니고 세계의 고려대로 발전해야 한다는 공감대와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평판이 조금 올라갔다고 만족해선 안 되고 내실을 다져야 할 때입니다.”
―고려대의 발전 구상은….
“우선 교육체제를 바꿀 겁니다. 외국에서 지식을 배워와 가르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지식을 창조해 수출할 정도로 학문 수준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스탠퍼드대 교수 수가 고려대보다 약간 적지만 세계 최고인 것은 교수의 질 때문입니다. 원어(영어)강의를 계속 확대하고 유능한 교수와 외국인 학생을 적극 유치하겠습니다.”
이 내정자는 “고려대가 상대적으로 열세인 이공계열과 의학계열을 발전시키기 위해 재정 지원을 늘리겠다”며 “병원은 잘 운영하면 수익이 꽤 생기는 만큼 획기적인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대학장 시절 발전기금 500억 원을 모아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재임기간 중 3000억 원을 모금하겠다고 했는데….
“무조건 돈을 내라는 시대는 지났고 모금을 ‘상품화’해야 합니다. 경영대학장 시절 건물에 회사 이름을 붙여주고 100억 원을 받았고, 중형 강의실은 2억 원, 작은 책상은 20만 원을 받고 이름을 붙여줬죠. 돈을 낸 분들도 강의실과 책상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내정자는 “기업처럼 대학을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하면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학문의 생명인 인문학과 기초과학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내정자가 과거 재벌개혁 등을 강하게 주장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할 말이 있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은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데 인식이 바뀌었나요.
“1980년대는 대기업 경영이 불투명했고 정경유착이 심해 경제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국 경제가 개방되면서 대기업들의 체질이 많이 바뀌어져 훨씬 투명해졌고 구조개혁도 상당히 많이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기업이 외국과 경제전쟁을 하기 때문에 보통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 얘기들인 만큼 반기업이냐, 친기업이냐로 볼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는 미국에서 공부해 순수 시장주의자이자 친기업론자이지요.”
그는 시민단체 대표 시절 새만금사업과 관련해 농림부를 ‘밑 빠진 독’상 수상자로 지정한 것에 대해 “정부 예산을 낭비한 것에 대해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지 일을 못하게 한 것은 아니다”며 “환경 논리 때문에 사업이 지연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은 교수사회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아직도 교수들이 변화에 둔감하고 경쟁 마인드가 부족합니다. 나는 우수한 논문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대명제를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연구 잘하는 교수, 잘 가르치는 교수, 사회활동이 많은 교수 등 자기 특성을 살릴 수 있게 유연성은 둘 겁니다.”
―‘3불(不)’정책을 포함해 정부의 대학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교육정책은 과외잡기 정책일 정도로 획일적입니다. 대학마다 건학 이념,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 장점 등이 다르잖아요. 대학이 본고사를 보건, 학교생활기록부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어떻게 반영하든 궁극적으로 자율권을 줘야 합니다. 대학이 잘하는지는 시장이 판단하게 되어 있어요.”
그는 “대학별 고사에 대한 규제가 많으니까 논술학원이 번창하고 돈 없는 집 자녀만 손해를 보는 부작용이 있는 만큼 교육정책도 시장을 거역하면 안 된다”면서 “기여입학제는 사회적 공감대가 미흡한 만큼 지금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이 교육에 투자하려면 모금만으로는 부족하죠. 전공을 살려 주식이나 채권 투자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려대는 구성원의 응집력과 모교애가 강해 다른 대학보다 유리하지만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신임 교수 채용과 시설 투자 등에 많은 돈이 필요한데 크게 투자할 여력이 있겠어요. 다만 학교 투자를 앞두고 잠시 대기하는 돈이 있는 만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돈을 굴려야죠. 어떻게 모은 돈인데, 은행 이자만 받아서야 되겠어요.”
이 내정자는 고려대 지원을 희망하는 수험생에게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에 “가능성과 역동성을 가진 고려대에 진학해 꿈을 펼치길 바란다”며 “국민도 고려대에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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