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앞에 서기 전, 동문 선배인 교수의 사무실에 들렀다. 선배는 학과의 장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때와 달리 요즘은 계열별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습니까. 전공 지원을 받아 보면 우리 과를 택하겠다는 학생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예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을 연마하겠다는 학생은 더욱 적을 수밖에요.”
‘왜 적은지’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영문학과나 중문학과에 가서 취직에 도움 되는 영어나 중국어를 익히겠다는 거죠. 그런다고 영어나 중국어를 더 잘할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요.”
이쯤에서 기자가 대학시절 공부한 학문을 밝혀 두는 것이 좋겠다. 기자는 1980년대 돌멩이와 최루탄 탄피가 나뒹구는 교정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했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를 하늘은 도울 수 있다’는 괴테 ‘파우스트’의 명대사는 힘든 시절마다 기자를 지탱하게 해 주었다. 그 밖에 많은 현인과 문호들이 남긴 명구는 갈피를 잡기 힘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한밤의 등불처럼 앞길을 밝혀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록 기자에게 많은 은혜를 베푼 전공이 오늘날 차가운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최근 서울대 인문대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사실을 발표했다. 2007학년도 전기 학과별 지원자를 받은 결과 3개 학과에 지망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불문과는 단 한 명이 지원했다. 반면 64명 중 40명이 영문학과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비인기 학문’을 전공으로 삼는 것이 꺼릴 만한 일일까. 동문회에 참석하면 졸업생들이 저마다 개성에 들어맞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할 때가 많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TV 드라마의 연출을 맡아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독일에 진출해 현지의 ‘프로’들과 호흡을 맞추거나, 광고업계 등 개성 있는 분야로 진출한 친구도 많다.
기자의 경우는? 독특한 전공을 택한 덕분에 나름대로 ‘지역 전문가’로 자처할 수 있었다. 쑥스럽지만 모국보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휘젓고 다닌 도시가 더 많았다. 학생 시절 빛나는 항성처럼 느껴졌던 귄터 그라스나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같은 현대의 문호들과도 대담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지혜로움이 모자란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적 가치만이 소중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려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취업의 문이 좁은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강구하고 선택한 결과가 전공의 호불호로 나타나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모두가 몰려드는 길이라고 해서 그 길만이 확실한 길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지식과 정보가 폭주하는 시대가 아닌가. 편의와 실용성에 따라 자신의 개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드는 전공의 ‘쏠림’ 현상은 다음 세대 사회와 문화의 건강성을 위해서도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분야에서나 선택과 경쟁이 격심해진 오늘날, 모두가 가는 길을 쫓는 것만이 실제로 편한 미래를 보장하는지부터 꼼꼼히 따져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유윤종 국제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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