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에 담기는 기사는 600자 안팎으로 짧아도 재미있다. 하지만 그 재미의 이면에는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애환과 분노, 연민이 담겨 있다. 올 한 해 휴지통에 담겼던 기사들을 되짚어 봤다.
개띠해(병술년·丙戌年)인 2006년 첫날 휴지통은 공교롭게도 개에 관한 기사로 출발했다. 지나가던 애완견을 보고 “맛있게 생겼다”는 농담을 던진 페루인 A(36) 씨가 항의하는 개주인 변모(40·여) 씨를 때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것.(1월 1일자)
불경기 탓으로 생계형 범죄도 휴지통에 자주 등장했다. 사흘 동안 밥 한 끼 먹지 못해 굶주림을 참다못한 20대 남성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현금 1820원을 훔쳐 나오다 경찰에 붙잡혔고(3월 9일자), 간경화를 앓던 친정아버지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진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새마을금고를 털려던 30대 주부가 붙잡히기도 했다.(11월 1일자)
또 40대 부부가 이혼한 뒤 각자 자식 1명씩을 맡아 기르다 생활이 쪼들리자 함께 부녀자를 납치하고 강도짓을 벌이다 구속됐다.(1월 21일자)
국민을 짜증스럽게 만든 몰지각한 공직자 이야기는 올해도 빠짐없이 등장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전북도와 김제시, 익산시 공무원이 공휴일에도 비상근무 중임에도 불구하고 전북도 AI 대책본부장인 행정부지사와 김제시청 고위 공무원들이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다.(12월 19일자)
독일 월드컵 열기가 빚어 낸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 2명이 한국-스위스전에서 어느 팀이 이길 것인지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직원이 “스위스가 이긴다”고 말하자 다른 한 직원이 “너는 애국심도 없느냐”며 따지다 주먹질을 주고받아 경찰서로 끌려갔다.(6월 23일자)
또 한국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 이름이 새겨진 붉은 악마 티셔츠를 약국이 있는 상가 건물 내 병원 등에 나눠 줬다가 담합행위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당한 약사가 억울하다며 행정소송을 내는 일도 있었다.(8월 2일자)
불법 폭력시위로 얼룩진 올 한 해 광주시가 불법 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하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중단 광주전남운동본부’ 산하 3개 단체가 “쌀이나 닭 돼지 배추 등 현물로 상환하겠다”고 맞섰고(12월 14일자), 실제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소속 농민 50여 명은 밤 12시경 광주시청 앞으로 몰려가 벼와 배추 파프리카 등을 기습적으로 야적하기도 했다.(12월 16일자)
‘괴물’에 앞서 한국 영화 최다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며 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왕의 남자’도 휴지통에 등장했다. ‘왕의 남자’ 출연 배우들이 영화 촬영 때 사용했던 각종 소품이 인터넷 경매에 나와 300만 원의 수입을 올렸고 이 돈이 소아암 환자를 돕는 데 쓰였다.(3월 17일자) 이 영화가 4월 18일 오후 8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영화관에서 마지막 상영을 하고 112일 만에 극장 상영을 마쳤다는 내용도 휴지통을 통해 소개됐다.(4월 19일자)
역사 왜곡을 일삼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규탄하기 위해 대학생 광고연합 동아리 ‘애드파워’ 회원 30여 명이 서울 시내 번화가를 옮겨 다니며 플래시몹(인터넷이나 e메일 등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약속된 행동을 짧은 시간에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벌이기도 했고(10월 2일자), 북한 핵실험 이후 ‘19세 이상 강제징집’, ‘예비군 비상소집’ 등의 유언비어가 번지자 유언비어 유포자 색출을 위해 병무청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촌극도 빚어졌다.(10월 14일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자 한명숙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은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사업소에 청자 2점을 주문 제작해 외교통상부로 보냈다. 한국인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반 장관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만든 이 청자는 유엔 사무총장 집무실에 비치된다.(11월 11일자)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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