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대 법인화는 반면교사
그래서 현직 총장, 전직 학장(한국의 총장), 현직 부학장(한국의 부총장), 대학법인화문제에 정통한 교수, 문부과학성 간부 등을 인터뷰하며 끝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져 봤다. “법인화가 된 2004년 4월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치자.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예외 없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법인화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법인화가 돼도 교육부가 대학 운영 전반을 통제할 것이라는 것도 반대 논리의 하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법인화 이전엔 시시콜콜 간섭을 하던 문부과학성이 법인화 이후엔 ‘결과’만을 강조할 뿐 거의 간여를 하지 않아 오히려 불안하다는 것이다.
예산이 줄어들어 등록금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도 사실과 달랐다. 예산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등록금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학은 없었다. 그렇게 ‘쉬운 방법’을 쓰는 것은 자기 대학이 무능하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대신 산학연대, 연구용역 수주, 기부금 확보 등을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국가공무원 신분을 빼앗긴 데 대한 불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업무가 대폭 늘어나 힘들다는 불평은 있었다. 다만 대도시 종합대에 비해 독자생존에 불리한 지방대나 단과대의 불안은 일본에서도 여전했다.
법인화를 둘러싼 한국의 고민은 일본 국립대 법인화 과정에서도 빠짐없이 논쟁거리가 됐다. 그런데도 일본 국립대학법인의 고위 관계자들이 “법인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대법인의 총학장 87명 중 4분의 3이 법인화가 학교 운영에 “크게, 또는 대체로 도움이 됐다”고 응답(아사히신문의 월간지 ‘론자·論座’ 조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은 기존의 국립대 틀로서는 ‘효율’ ‘경쟁’ ‘성과’를 요구하는 시대적 변화에 부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대학 관계자들은 법인화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있었다고 뭐가 달라졌겠느냐고 반문한다.
취재 과정에서 ‘신기한’ 사실도 알게 됐다. 대부분의 국립대에 얼마 전까지도 총동창회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수집단이 무리를 짓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일본사회의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본의 양대 명문 국립대인 도쿄대가 법인화 이후 6개월이 지난 2004년 10월 ‘도쿄대 학우회’를 만들고, 교토대도 지난달에 ‘교토대 동창회’를 발족시켰다. 고미야마 히로시 도쿄대 총장은 총동창회와 법인화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했다. 국내가 아닌 세계를 상대하기 위해 졸업생들의 정보, 자금, 조언이 필요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 없던 것이 필요해진 현실, 그것이 바로 법인화가 몰고 온 변화다.
가능성과 문제점, 모두 확인 가능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는 우리에겐 소중한 ‘실험장’이다. 일본은 이미 ‘예상 문제’가 아니라 ‘기출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다. 일본을 연구하면 가능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찾아낼 수 있다.
한국의 국립대가 법인으로 바뀔지, 바뀐다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인화를 하든, 안 하든 지금의 한국 국립대로는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우수학생이 몰려오고, 국민의 세금으로 걱정 없이 먹고살며,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대접받는 시대는 끝났다. 그런 선물을 가져다줄 산타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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