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윤재선]日‘평화헌법’ 버려선 안된다

  • 입력 2006년 12월 26일 02시 56분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내년 대선에 대비한 기 싸움에 몰입하고 국민은 치솟는 부동산 가격 등에 한창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인 이달 15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는 앞으로 일본이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법안이 통과됐다.

일본 교육에 관한 헌법이라고도 불리는 교육기본법의 개정안과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하는 법안이었다. 민주당 공산당 등 야 4당은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는 등 반대했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한 여당에 의해 통과됐다.

교육기본법은 1947년 제정된 후 처음 개정되는 것으로 개인 인권보다 공공의 정신을 중요시하는 등 애국심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현행 헌법 하에서 일본은 ‘해석 개헌’이라는 편법으로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으로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성의 본래 임무로 격상됐다. 이제 파병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방 예산도 늘릴 수 있는 행정 체제를 마련했다.

교육기본법 개정과 방위청의 방위성 승격은 일본이 전후체제로부터 탈출하는 첫걸음을 걷기 시작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음 수순은 헌법 제9조의 개정이며 최종 목표는 현재의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재편성해서 일본이 해외에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바꾸려는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요즘 일본 사회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전후에 제정된 ‘헌법의 정체성’에 관한 논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대 쟁점은 ‘평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헌법 제9조다. 요지는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본의 무력행사를 영구히 금지하고 군대를 보유할 수 없으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개헌론자들은 이 같은 내용의 헌법이 미군정 하에서 제정된 점령군의 산물이므로 이제 일본 국민이 주체가 된 헌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평화 헌법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에 의한 책임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인이 자업자득으로 제정했다는 점과 결과적으로 경제대국 일본을 건설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논란이 없지 않지만 헌법 9조는 전후 일본 근대화에 일정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고 자평(일본 지방분권추진위원회 중간보고)하고 있다. 평화헌법 체제하에서 일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으며 정치 경제 군사 등 여러 방면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여 왔다.

많은 국가가 핵무기 보유 등 군사력에 의한 평화안정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군사력 경쟁이 오히려 위기를 높일 수 있다는 교훈은 역사적인 반면교사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평화헌법의 수호가 핵무기보다 더욱 강력한 무기가 되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시아 각국 간 협력체제도 더욱 필요한 때이다. 일본이 시대 조류에 역행하지 않고 평화헌법을 보호하는 것이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평화국가가 되는 길이다. 일본이 세계를 향해 평화헌법을 수출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재선 한림성심대 행정학과 교수·현 교토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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