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어위시재단 ‘난치병 어린이 소원 들어주기’ 사연들

  • 입력 2006년 12월 28일 03시 05분


2006년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을 통해 소원을 이루었던 이태현 군, 손세진 양, 이준희, 찬희 형제(위부터). 이 군은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싶어 했으며 손 양은 인기 개그맨들을 만나기를 원했고 준희, 찬희 형제는 노트북컴퓨터를 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6년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을 통해 소원을 이루었던 이태현 군, 손세진 양, 이준희, 찬희 형제(위부터). 이 군은 망원경으로 별을 보고 싶어 했으며 손 양은 인기 개그맨들을 만나기를 원했고 준희, 찬희 형제는 노트북컴퓨터를 원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더위가 시작될 무렵인 6월, ‘캐릭터 인형’을 좋아하는 박유진(5·가명) 양은 병원에 누워서 조용히 소원을 빌었다.

“하나님! ‘뿡뿡이’와 ‘뽀로로’랑 함께 뛰어놀게 해 주세요.”

그러나 유진이에겐 스스로 팔다리를 움직일 힘이 없었다. 모세혈관이 부풀어 올라 작은 몸 곳곳이 불긋불긋해 항상 달아오른 것 같다.

‘피부근염’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던 유진이는 문밖에서 스며들어오는 “저 아이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라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눈물만 흘렸다.

유진이는 겨우 걸음을 제대로 걷기 시작했던 세 살 때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숟가락 드는 것조차 너무 힘들 정도가 됐다. ‘소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를 나이에 희귀병 판정을 받고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7월 4일 유진이의 5번째 생일에 반가운 손님들이 나타났다. 뿡뿡이와 뽀로로가 케이크와 크레파스 등 선물을 들고 병원을 찾은 것. 안구와 눈 주변의 근육까지 변형돼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던 유진이는 멍하니 뿡뿡이를 바라봤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유진이 생일 축하합니다.”

뿡뿡이와 뽀로로는 부모님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케이크를 잘랐다. 그러나 유진이는 기쁨을 표현할 수도 없어 웃음조차 병든 근육 속에 묻혀버렸다.

2주 뒤 유진이는 아빠 엄마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즐거웠던 마지막 생일을 생각하는지 유진이는 미소를 띤 채 눈을 감았다.

뿡뿡이 복장을 했던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자원봉사자들은 며칠 전 유진 양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2006년은 유진이가 하늘나라로 간 해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유진이가 정말 좋아했던 뽀로로, 뿡뿡이와 잘 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올라요.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유진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준비된 파티를 열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2003년부터 난치병에 걸려 18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판정된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다.

전 세계 27개국에서 운영되는 이 재단은 난치병 어린이가 인터넷(www.wish.or.kr)과 전화(02-3453-0318)로 소원을 신청하면 봉사자들이 파견돼 어린이의 상황을 살펴본 뒤 소원을 들어준다.

이 재단은 올 한 해 동안 203여 명의 소원을 들어줬으며 소원을 이루고 하늘나라로 간 어린이는 6명이다. 소원만 신청한 상태에서 안타깝게 숨진 어린이도 4명이나 된다.

소원을 이룬 어린이들은 여느 아이와 다름없었다. 133명(66%)이 “무엇을 갖고 싶다”고 원했고 그중 75%인 99명이 “노트북 또는 데스크톱 컴퓨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 입원해 있으며 지루한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의 ‘아픈’ 소망이다.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신청한 어린이는 40명으로 22%를 차지했으며 가고 싶은 장소로는 30명(77%)이 제주도를 꼽았다. 마지막 소원으로 에버랜드에 가고 싶다는 아이도 5명 있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아이들이지만 장래 희망을 ‘소원’이라며 신청하기도 했다. “맛있는 빵을 마음껏 만들어 먹을 것”이라며 ‘제빵사’가 되겠다고 소원을 빈 어린이도 있었으며 패션모델, 클럽 DJ 등도 되고 싶어 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고 말한 어린이들 중에는 유진이처럼 “인형들을 만나고 싶다”는 어린이도 있었으며 “가수 인순이를 보고 싶다”, “슈퍼주니어를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밝힌 어린이도 있었다.

한 해가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짧은 생명이 저물어가는 것을 아는 ‘꺼져가는 촛불’들이지만 지금도 이 재단에는 마지막 ‘소원’들이 밀려들고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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