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대한민국, 그대들 덕에 행복했어요

  • 입력 2006년 12월 28일 03시 05분


《2006년은 유난히 명과 암이 짙게 엇갈린 한 해였다. 부동산 값이 광풍처럼 치솟고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많은 국민에게는 여느 해보다 힘든 해였다. 그러나 수출 역군들은 묵묵히 땀 흘리며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돌렸고, 역경을 딛고 성공신화를 이룩하거나 인류애를 실천한 한국인들이 있었다. 분단국가이지만 첫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했고, 스포츠계에서도 한국과 한국인을 빛낸 세계적 스타가 여럿 떠올랐다.》

▼수출 3000억 달러 산업전사…맨손으로 이룬 금자탑▼

올해 한국의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장한 기업인과 근로자 등 수출 역군이 이뤄 낸 쾌거다.

한국이 수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그해 수출액은 1900만 달러로 세계 100위권이었다. 대부분 오징어 같은 건어물과 텅스텐, 무연탄 등 1차 산물을 판 것이었다.

1960년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수출 드라이브가 걸렸다. 1964년 1억 달러, 1977년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피치를 올렸다.

수출 품목도 1970, 1980년대 의류와 신발 등 경공업 제품에서 1990년대 이후에는 자동차, 반도체, 휴대전화 등 첨단 제품으로 바뀌었다.

올해 3000억 달러 수출은 특히 고(高)유가와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 등 어려운 상황에서 달성한 것이라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수출 3000억 달러를 넘어선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중국 영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캐나다 벨기에 등 10개국이 전부다.

이제 수출 5000억 달러를 돌파할 날도 머지않았다.

▼슈퍼볼 영웅 워드…혼혈편견 깬 살인미소▼

올해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혼혈아’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기회가 많았던 만큼 혼혈을 바라보는 우리의 낡은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워드 현상’이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 흑인 아버지 사이의 혼혈아로 태어나 지난 시즌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하인스 워드(30·피츠버그 스틸러스).

그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특유의 ‘살인 미소’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글로 오른쪽 팔에 ‘하인스 워드’를 새길 정도로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는 그는 “모든 영광은 어머니 덕분”이라며 어머니 김영희(55) 씨의 희생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혼혈로 자라며 겪어야 했던 ‘과거’도 잊지 않았다. 혼혈아동 등 불우 청소년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것. 직접 기부금을 내고 한국에서 받은 광고 수입까지 합쳐 220만 달러(약 20억9000만 원)를 만들었다. ‘워드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지구촌 평화의 대통령▼

내년 1월 1일부터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게 되는 반기문(62) 전 외교통상부 장관.

그는 10월 192개 유엔 회원국을 대표하는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한국인이 전 세계 갈등과 분쟁의 조정자이자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된 것. 내년부터 국제외교 무대에서 벌어지는 평화유지 및 인권 고양 활동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을 것이다.

반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36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적(敵)이 없는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특출한 친화력을 인정받았다. 국가 간 전쟁이나 인종 갈등, 종족 살육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가 중재를 해야 하는 유엔 사무총장에겐 꼭 필요한 자질이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에 가서 미국 적십자사의 주선으로 존 F 케네디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던 것을 계기로 외교관이 되는 목표를 세웠다.

▼피겨 요정 김연아…세계로 비상한 종달새▼

한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의 보급은 1924년 1월 일본 유학생 출신인 이일(李一)이 ‘피규어 스케잇 구락부’라는 모임을 만들어 창경원의 언 연못에서 탄 것이 시초다. 이후 80여 년간 한국의 피겨 발전은 지지부진했다.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유망 선수를 발굴해 키우는 피겨 강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은 한국엔 넘지 못할 ‘벽’이었다.

하지만 2006년 12월 17일 16세 소녀 김연아(군포 수리고)가 높아만 보였던 그 벽을 한달음에 훌쩍 넘었다. 김연아는 이날 러시아에서 열린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싱글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인 여섯 살 겨울에 피겨화를 처음 신은 김연아는 꼭 10년 만에 자신의 연기 주제곡 ‘종달새의 비상’처럼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김연아의 비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내년 1월 말 동계아시아경기와 3월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한다.

▼수영 3관왕 박태환…금빛물살의 마린보이▼

박태환(17·경기고)은 한국 수영계의 대들보가 됐다.

그는 이달 초 카타르에서 열린 2006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수영 3관왕이 됐다. 국내 선수로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의 최윤희 이후 24년 만의 수영 3관왕이다. 자유형 200m, 400m,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200m, 1500m에선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계속 성장 중인 그의 상승세는 놀랍다. 1500m에서 세운 14분 55초 03의 아시아 신기록은 기존 기록을 5.24초나 앞당겼다.

아시아경기에서 금 3, 은 1, 동메달 3개로 7개의 메달을 목에 건 그는 대회 기간에 몸무게가 8kg이나 빠졌다. 피로에 지쳐 있음에도 계영 400m와 800m, 혼계영 400m에 출전해 한국이 동메달 3개를 추가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꿈은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AI 어떻게 막아야 하나요? 당신의 빈자리 너무 큽니다▼

故이종욱 WHO 사무총장

월 타계한 ‘아시아의 슈바이처’ 이종욱(사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선출직 유엔전문기구의 수장을 지낸 첫 한국인이었다.

그는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과였다.

이 일로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2003년 1월 WHO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사무총장 시절에도 그는 2000cc 하이브리드카를 고집하고 식사는 가능한 한 구내식당에서 할 정도로 소탈했다. 갑자기 타계하기 직전까지도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질병,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유엔 기구의 수장이기 전에 인류애를 가진 의사였다.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내내 경기 안양시 라자로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평생 반려자가 된 가부라키 레이코(鏑木玲子) 여사도 그때 만났다. 의대 졸업 후에는 개업 대신 태평양 사모아 섬에서의 봉사를 택했고 거기서 WHO와 첫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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