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단이 사용하는 자동발신시스템(ACS·Auto Calling System)이나 발신자번호표시(CID) 변조를 규제할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3일 정통부와 경찰에 따르면 전화를 이용한 금융사기는 2005년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700여건, 피해 금액은 40억 원에 이른다.
사기단은 주로 ACS를 통해 무작위로 전화를 건 후 관공서를 사칭하는 녹음 메시지를 재생한다.
실제로 한 사기단은 녹음 메시지에서 "○○법원인데 재판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2차 출석을 통보하니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으면 9번을 누르라"고 한 뒤 수신자가 9번을 누르면 직접 전화를 받아 "사건조회에 필요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계좌ㆍ카드번호 등을 불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관공서인줄 알고 개인정보를 제공해 금전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지만, ACS 사용이나 CID 변조를 규제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
정통부의 한 관계자는 "통신사업자로 등록만 하면 누구나 ACS 장비를 살 수 있는데, 어떤 용도로 장비를 사용하는지를 사후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통신사업자가 아닌 개인의 경우 불법 행위에 쓰인 전화 회선을 차단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
발신자번호표시 조작도 아직까지 적당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 현재 사기나 폭언, 협박, 희롱 등 목적으로 발신자번호표시를 변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지만, 언제 본회의를 통과할 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사기단은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활개를 치며 사기 행각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등 외국에서 전화를 걸어 사기 행각을 벌이는 '국제 사기단'이 등장하고 있으며, 단순 금융사기를 넘어 '아이를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다.
정통부의 다른 관계자는 "통신의 자유 및 이용자 편의 등을 고려할 때 원칙적, 기술적으로 이 같은 사기를 사전에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며 "발신자번호표시 조작 등의 불법 행위를 막기 위해 나름대로 법률 개정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권모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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