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패한 지도자를 처단하는 일은 역사의 ‘관행’이기까지 하다. 역사가 E H 카는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그에 따르면 독일인들만큼 히틀러를 증오하는 사람도 없다. 독일 전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한 사람의 몫으로 돌려 버릴 수 있는 까닭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러시아인들은 스탈린에게, 미국인들은 매카시에게 주저하지 않고 돌을 던진다.
후세인 처형에도 똑같은 논리가 통할 수 있겠다. ‘선한 이라크인’은 후세인의 농간에 말려들었을 뿐이다. 온갖 잘못과 혼란은 오로지 후세인 탓이다. 따라서 이라크인은 미국의 적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는 더욱 아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이라크 권력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대를 이끄는 인물은 결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영웅이나 악당은 그네들이 활약할 상황이 되었을 때만 출현한다는 말이다. 후세인이 이라크를 파멸로 이끌었다기보다는, 이라크가 추락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었기에 후세인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 점에서 아랍의 영웅 살라딘 대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살라딘은 악명 높던 기사 아르나트의 목을 직접 베어 버렸다. 십자군의 우두머리인 기 왕이 겁에 질리자 살라딘은 친절하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왕은 왕을 죽이지 않소. 이 자는 자신의 만행 때문에 죽은 것이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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