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최근 대입 논술에서 그래프나 도표, 통계표의 출제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논술 문제가 제시하는 자료는 앞으로도 글로 된 지문이 대다수를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프, 도표, 통계표 같은 자료를 같이 주는 대학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도표나 그래프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항에서부터, 자료를 분석한 다음 필요한 결론을 추론하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또 자료를 바탕으로 상황 변화를 예측하는 문항 혹은 자료와 제시문을 관련지어서 문제를 추출한 후 해결책을 모색하게 하는 문항 등 다양한 방식의 문제가 출제되고 있습니다. 2008 통합 교과형 논술에서도 이 경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왜 논술 문제에 그래프, 도표, 통계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을까요? 최소한 네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거시적 차원에서 다양한 자료를 맥락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자료 분석 능력은, 모든 결과가 통계로 정리되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이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 능력으로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급 공무원을 뽑기 위한 외무고시나 행정고시에서도 최근 1차 시험으로 공직적성평가(PSAT)를 시행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자료해석 능력은 언어 논리 영역, 상황 판단 영역과 더불어 주요 영역 중 하나로 설정되어 평가되고 있습니다.
둘째, 고교 교과 과정을 적극 반영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교과의 교과서에는 주요 사회 현상과 관련된 도표, 그래프, 통계자료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따라서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기본적인 자료 해석 능력은 갖추어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합니다.
셋째, 도표, 그래프, 통계자료를 해석하는 요소가 문항에 포함되면 그만큼 평가의 객관성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료의 경우 다양한 해석은 쉽지 않고, 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폭이 넓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답의 범위가 좁아지는 문제를 낼 수 있고, 이를 통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학 수학 환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논술 문제 제시문은 대학의 수학 환경을 축소 시뮬레이션 하는 의미도 있다고 지난번에 이미 언급했습니다. 요즘 대학에서는 강의실마다 빔 프로젝터가 장착되어 있고 이에 따라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자료를 스크린에 비추어 진행하는 강의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렇게 대학 강의의 대다수가 시각화된 자료를 많이 이용하는 수업환경으로 바뀌다 보니 수업 중에 그래프, 도표를 활용하는 빈도가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이런 자료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응 능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학생들 처지에서는 먼저 사회 교과 관련 교과서에 나오는 도표, 그래프, 통계자료들을 가지고 자료를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을 꾸준히 길러야 합니다.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쟁점이 된 문제와 관련된 도표나 그래프를 신문 자료를 통해 선별하여 그 의미를 읽어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힘들지 모르니 학교 단위에서 최근 자료들을 정리하여 제공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때 통계자료 자체를 해석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자료를 바탕으로 현실을 분석하거나 주어진 제시문과 연관 지어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큰 변화는 이른바 ‘통합형’ 문제의 출제 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언어 논술과 수리 논술을 통합하여 인문계에서도 수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문항을 문제 세트에 포함시키는 학교가 늘어날 전망입니다.
대학의 연구 과정에서나 실제 사회생활에서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수리적으로 분석해야 하거나 혹은 수리적 사고 능력과 분석 능력을 활용하여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수학 교과에서 배양하는 수리적, 논리적 사고는 인문계에서도 중요한 수학 능력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평가의 한 영역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통 수학 수준에서 다루는 수학적 원리를 현실의 문제 분석과 해결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문제가 많이 출제될 전망입니다. 거꾸로 자연계 논술에서도 인문적 글쓰기 문항을 일부 포함시키는 대학이 많지는 않지만 일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논리적 서술 능력은 전공을 불문하고 갖추어야 할 기본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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