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김인재 인권정책본부장은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07년 업무계획을 공개하면서 “인권 관련 판결의 국제 동향과 기준, 인권위의 활동 사항 등을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제공하고 인권 관련 중요 재판 및 판례를 모니터링하고 의견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업무계획에는 중요 인권재판에 대한 의견 제출로 동시대 인권수준에 맞는 판례 정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01년 11월 인권위가 출범한 이후 5년간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사법부에 의견을 제출한 사례는 2003년 3월 호주제 폐지에 관한 의견과 같은 해 6월 가죽 수갑 등 감옥에서 쓰이는 형벌도구에 대한 의견을 헌재에 제출한 것 등 두 건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인권위법에 따라 인권 관련 재판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지만 인력이 모자라는 데다 “사법부의 판단에 국가기관이 의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지적 때문에 의견 표명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진보적인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인권위의 이런 방침을 비판해 왔으며 이 사안은 사법부의 독립성 침해와 실효성 문제로 그동안 논란을 빚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8조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판이 계속 중인 경우 법원 또는 헌재의 요청이 있거나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인권위의 이런 방침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또 상당수 전문가는 제도를 다루는 헌법 재판에 대한 의견 제출은 가능하지만 개별 재판에 대한 의견 제출은 자칫하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서강대 법학과 임지봉 교수는 “그동안 인권위가 인권 관련 재판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며 “인권위 법에 명시된 것과 같이 재판부에 대해 법적 권한이 없는 ‘의견 제출’을 하는 것은 인권위의 권리”라고 말했다.
반면 숭실대 법학과 강경근 교수는 “인권위의 의견 제출이나 권고가 남발되면서 강제력 없는 ‘권고적 효력’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퍼져 있다”면서 “법적 재판권 침해는 아닐지라도 국가기관의 의견에 재판관이 심리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인권위로서는 ‘영향력 없는 의견’을 남발함으로써 그 권위마저 추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법학과 장영수 교수는 “인권위가 제도적 측면을 다루는 헌재의 재판에는 의견을 제출할 수 있지만 개별 사안을 다루는 재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경우 자칫하면 구체적인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며 “사법부의 독립은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 밖에 △새터민(탈북자) 인권 증진 △시설 생활인과 장애인 인권 증진 △국제결혼자와 이주 노동자 인권 증진 △인권침해 및 차별판단 지침 수립 등을 신년 중점 추진 과제로 발표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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