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 라인
나이든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떤 이유에서인지 딸과 떨어져 지내는 그는 매번 딸에게 속죄의 편지를 쓰지만 반송되어 올 뿐입니다. 은퇴한 복서이자 유일한 친구 스크랩(모건 프리먼)과 넉넉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살던 프랭키에게 어느 날 매기(힐러리 스왱크)라는 여자 복서 지망생이 나타납니다. 31세 나이에도 밤낮 권투에 매달리는 그녀의 근성에 감복한 프랭키는 매기를 제자로 받아주죠.
프랭키와 매기는 아버지와 딸처럼 친밀한 관계가 됩니다. 매기는 강펀치를 날리며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챔피언전에 나선 매기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린 뒤 상대에게 등을 보였다가 불의의 일격을 받고 쓰러지죠.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된 매기. 아,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 걸까요. 그녀에겐 썩어가는 왼쪽 다리마저 잘라내야 하는 시련이 겹칩니다. 그녀는 프랭키에게 자신을 안락사 시켜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합니다. 갈등하던 프랭키. 결국 매기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준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영화를 통틀어 가장 핵심적인 단어(혹은 대사)는 2개입니다. 하나는 프랭키가 매기에게 “너 자신을 보호하라”면서 입버릇처럼 당부하는 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랭키가 매기의 가운에 게일어(아일랜드의 토속어)로 새겨주는 뜻 모를 단어 ‘모쿠슈라’이죠.
“너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은 어쩌면 프랭키가 자기 자신을 향해 주문처럼 외고 있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남을 믿었다가 배신당하기를 거듭해온 프랭키로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받는 경험을 더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프랭키는 결국 ‘나의 사랑하는 혈육’이란 뜻을 지닌 단어 ‘모쿠슈라’를 매기의 가운에 새겨줄 만큼 매기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매기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처를 더는 입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영화의 주제어는 ‘진정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딸을 그리워하는 프랭키와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매기는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엶으로써 각기 딸과 아버지의 부재(不在)가 주었던 공허감과 안타까움을 극복하니까요. 두 사람은 피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결합된 또 다른 가족이었던 겁니다.
매기의 가족들을 보세요. 그들은 매기와 피를 나눈 ‘생물학적’ 가족, 즉 ‘혈육’이지만, 매기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 같은 존재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프랭키는 매기의 병상을 한시도 뜨지 않으면서 온갖 수발을 다합니다.
영화는 매기 가족과 프랭키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집니다. 저주와 이기심이 도사린 ‘진짜’ 가족보다는 사랑과 희생을 나누는 ‘가짜’ 가족이 정녕 ‘진정한’ 가족이 아닐는지요.
[3] 더 깊게 생각하기
하지만 ‘가족애’라는 단어만으로 영화를 요약할 수 있을까요? ‘가족애’는 프랭키가 보여주는 뜻 모를 (그러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듯 보이는) 행위들을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프랭키는 다음 두 가지 행위를 20여 년간 반복해 왔습니다.
①친딸에게 속죄의 편지를 보낸다. ②한 주도 빠짐없이 성당에 나와 기도한다.
프랭키는 딸에게, 그리고 신(神)에게 용서를 구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프랭키가 권투선수들이 입은 치명적 상처를 치료하는 ‘상처 전문가’인 점도, 평생 동안 타인의 고통을 돌보고 치유함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씻어내고자 하는 프랭키의 속죄의식을 짐작하게 하는 설정입니다.
거듭된 편지와 기도에도 불구하고 프랭키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더 큰 ‘시험’에 들게 되니까 말이죠. 매기의 고통스러운 삶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해준 프랭키는 신 앞에 지은 엄청난 죄과를 씻을 길이 없게 됩니다.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져버린 그는 여생을 속죄의 나날로 채워갈 것입니다.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속죄’라고 할 수 있죠.
[4] 내 생각 말하기
우리는 매기를 안락사 시킨 프랭키의 행위를 두고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 프랭키의 행동을 ‘사랑의 발로’로 보는 시각입니다. 매기의 삶이 더 비참해지기 전에, 팬들의 환호성이 그녀의 귓전을 떠나가기 전에 매기의 생명을 끊어 준 프랭키의 행동은 매기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요? 반면 프랭키의 행동을 ‘살인’으로 보는 관점도 가능합니다. 매기가 안락사를 원했다 하더라도 신만이 거둬갈 수 있는 인간의 목숨을 인위적으로 앗아간 프랭키의 행위는 용서 받지 못할 죄이며 명백한 범법 행위로 볼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프랭키의 행위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려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영화 속 매기는 31세에 권투를 시작해 종국엔 꿈을 이뤘습니다. 2005년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감독상을 거머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지금 뭔가를 시작한다면, 아무리 늦어도 그건 결코 늦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은 분명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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