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답안이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조건은 폭넓은 접근입니다. 폭넓은 접근이란 무엇일까요? 단편적이고 일면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각적 접근이라고 해서 꼭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한 관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한 번이라도 관점을 전환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현대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가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두 문단으로 답을 썼다고 합시다.
[ (A)우선 거시적으로 보면, 비판적 사고는 정보 사회의 전개 과정을 고려할 때 꼭 필요하다. 정보화로 인해 의사소통의 양과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의사소통이 증가하면 언어활동이 증가하게 되고, 나아가 언어활동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선은 의사소통의 도구를 습득하는 것이 주요 과제로 등장한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가 필수 과목이 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더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견해를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제시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면 아무리 의사소통의 양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공허한 의사소통에 이를 뿐이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보화 시대에 꼭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제대로 갖춘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는 꼭 필요한 것이다.
(B)또한 비판적 사고는 대학에서 학문 활동을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학문 활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정당화 작업이다.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면서 근거를 함께 제시할 수 없다면, 믿음을 내세워 정당화 작업을 배제하는 신앙이나 주술을 학문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학문 작업의 성과가 ‘논문’이란 형태로 제시되고, 또 대학 입시에서 논술고사를 치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러한 합리적 정당화 작업이 학문 활동에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이 대중화되면서 학문 활동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현대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근거의 올바름 여부를 따져 물을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은 공부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필수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일면적, 단편적 논의를 극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선 (A)에서는 정보사회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그리고 일반 민주 시민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비판적 사고가 필요함을 밝혔습니다. (B)에서는 관점을 바꾸어 학문 영역에서 비판적 사고가 기초 능력임을 들어 그 필요성을 밝혔습니다. 결국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영역을 두 차원을 나누어 검토하였기 때문에, 짧은 분량이지만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각적인 접근이 더 필요한 맥락은 바로 해결책을 모색할 때입니다. 창의적 문제 해결을 담고 있는 답안이 되기 위해서는 깊이 있게 문제를 분석한 뒤, 의미 있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과제가 바로 해결책 제시입니다. 열심히 하자. 최선을 다하자, 정신 바짝 차리자 식의 당위적 수준에 그치고 말거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살리자, 양자를 적절히 조화시키자 식의 추상적 제안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제안으로 어떻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립 서비스’에 불과한 것이지요. 내실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다음의 접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첫째, 차원, 수준, 영역을 구분하여 접근해 보는 것입니다. 사안에 따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혹은 정부 차원과 민간 차원 등으로 나누어 보거나 혹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영역을 나누어 접근해 보면 구체적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해결 주체를 고려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문제든 혼자서 해결할 수 없고, 관련 당사자가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문제와 관련된 당사자들을 빠짐없이 고려하여 각자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 보면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현장의 체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사, 학부모, 학교당국, 정부, 언론,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므로 이들이 각각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검토해 보면,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해집니다. 셋째, 단계별 접근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한번에 해결될 수 없습니다. 단기, 중기, 장기로 관점을 나누어서 접근하는 다각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단기 관점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약화시키는 응급 처치 개념의 대책을 마련하지만, 중기 관점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고 치료하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법과 제도를 제안해야 합니다. 장기 관점은 문제를 예방하는 차원이므로 의식을 개혁하고 교육에 힘쓰는 등의 근본적 차원의 논의가 제시될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 학생들의 논술 답안을 읽어 보면 우리 조국의 장기적 전망은 너무나 밝습니다. 모두다 의식 개혁과 교육에 힘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앞이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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