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의과대 길병원 이범구(53·정형외과 교수) 진료부원장은 ‘해외 재난구호 전문가’로 통한다.
지진이나 해일, 홍수 등이 발생해 큰 피해를 본 국가에 이 병원 의료진을 이끌고 가거나 혼자서라도 찾아가 의술을 베풀고 있기 때문.
기독교 신자인 그는 2004년 한 교회가 의료시설과 인력이 부족한 몽골에서 단기간 무보수로 일할 의사를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지원했다.
“몽골의 의료 수준은 6·25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서기 시작한 한국의 1950년대 말 수준이에요. 한국도 지구촌의 도움을 받아 일어선 만큼 어려운 형편의 국가를 돕고 싶었어요.”
몽골에서 열흘간 봉사활동을 펼치고 돌아온 그는 2005년 파키스탄에서 지진으로 8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자 병원장에게 의료지원단을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병원장은 흔쾌히 허락했고 그는 봉사단장을 맡아 서둘러 의료진을 꾸려 국내 병원 가운데 처음으로 파키스탄에 도착해 현지에서 2주 동안 머물며 50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무자파라바드에서는 여진의 위험이 계속됐다.
또 식량과 금품을 약탈하기 위해 총기로 무장한 강도가 곳곳에서 들끓는 등 치안도 불안했지만 이 부원장이 이끄는 의료진은 밤을 새워가며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를 돌봤다.
당시 그의 봉사활동에 감명을 받은 파키스탄 의사와 자원봉사자들은 아직까지 그에게 안부를 묻는 e메일과 편지를 보내온다.
지난해 7월 지진해일(쓰나미)이 강타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오지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그는 매주 목요일 퇴근 후면 서울역으로 향한다.
2005년부터 갈릴리의료선교회와 함께 이곳에서 기거하는 노숙자를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많아 그의 진료를 거부하기 일쑤지만 그때마다 노숙자를 설득하고 약을 챙겨주느라 진땀을 뺀다.
그는 2004년 길병원 의사와 간호사 50여 명이 만든 의료봉사단 ‘화이트 피스(White Peace)’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이 부원장은 매달 한 차례 인천지역 양로원과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이 필요한 경우 병원에서 운영하는 사회사업실에 의뢰해 무료로 수술을 받도록 주선한다.
그는 끊어진 인대를 살리는 데 필요한 고정 기구인 인대금속판(ligament plate)을 고안해 수입에만 의존하던 이 제품의 국산화에 성공한 발명가이기도 하다.
이 부원장은 “한국도 이제는 과거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을 때”라며 “재앙이 발생해 의료진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은 지구촌 어디라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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